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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2017-06-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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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독서토론동아리

    책세상

     

     

     

     

     

    원시시대부터 과학문명이 발달하기 전까지 번갯불은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제우스와 같은 강력한 신으로 대변되는 것이 바로 불이었다. 인간에게 불을 건네주고 영원의 고통 속에 살게 된 프로메테우스. 불은 인류에게 문명을 전달하는 신과 같은 존재로 상징된다. 불을 다룸으로서 인간은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진화를 거듭한 인간은 더 이상 신으로부터 선사받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드디어 신이 죽은 것이다.

     

     

     

    불을 극복한 인간에게 그 다음은? 니체는 고민했을 것이다. 더 이상 신의 섭리로 설명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갈 인류에게 어떤 지평을 열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로 차라투스트라를 선택한다. (차라투스트라는 불을 숭배하는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음역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라는 상징을 차용한 이유는 원시 인류의 생존에 무엇보다 중요했던 불을 상징하는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 빗대어, 자신의 주장이 미래 인류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니체는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현실인 이 땅 위에서의 삶에 등을 돌리도록 부추기는가 하면 한낱 가정에 불과한 저편의 초월적 세계에 삶의 의미를 두도록 사주해온 플라톤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이원론을 생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규정, 뿌리쳤다.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위에서의 삶을 하찮은 것으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폄훼하도록 만들어 왔다는 이유에서였다. (니체전집13. 본책 16p 각주)

     

     

     

     

    내 생각에 니체는 모든 사람에게 위버맨쉬가 되기를 바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위버맨쉬가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것을 우려했을 것같다. 왜냐면 플라톤적 이원론을 배척해서 신의 역할을 배제했는데 위버맨쉬라는 또다른 신격을 창조해낸다는것은 자기모순이기 때문이다. 대신 니체는 인간이 자신의 위태롭고 불완전한 모습을 굳건히 받아들이고 극복해내는 과정 자체를 바란 것 같다. 내가 바로 식욕, 성욕, 수면욕의 노예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인내를 발휘하여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하루를 살아내는 평생을 살아가는 그것을 바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深淵)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데 있다.

    (민음사. 본책)

     

     

     

    니체에 따르면 행복에 집착하는 자는 인간말종이다. 인간말종은 일이 행복이며 삶의 목표는 수명연장이다.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자신들의 조촐한 환락을 즐긴다. 그러면서도 건강은 끔찍이도 생각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행복이란 불행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너무도 동의한다.

     

    행복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불행을 생각해야 한다. 행복은 너무 불행하지 않게 살아가려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견딜 만하다면 그것이 곧 행복한 인생이라는 말이다. 인생이란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극복하고 뛰어넘어야 할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다.

    (쇼펜하우어 잠언집)

     

     

     

     

    행복에 집착하는 정신은 (니체에 따르면) 나의 자아가 아니라고 한다. 자아는 신체에서 발현되며, 창조하는 신체가 정신을 창조했다고 한다. 니체가 말한 대지에 충실하라는 것은 자기 신체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역시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자아가 형성되는 것인가?)

     

     

     

     

    자기 생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 니체가 제시한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1. 관능의 순진무구에 이를 것

    2. 최고로 경멸할 적을 만들어 낼 것(내 수준과 똑같은 적을 만난다. 덜덜)

    3. 그 적은 나의 최고의 벗이 되어 줄 것

    4. 시장의 파리떼들로부터 벗어나 고독 속에 침잠할 것

    5. 자신의 생을 보다 신뢰하여 내면에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내실이 있을 것

    6.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하나를 산출해낼 것

    7. 목표와 상속자를 두고 내가 원할 때 죽을 것

     

     

     

     

    어쩜 이리도 내가 원하는 삶을 그려놨을까. 니체는 나의 스승이 될 만하다. 니체의 위버맨쉬는 아마도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그 속에서 완전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대신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자신을 신뢰하여 성숙한 인간을 낳고 길러내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자녀를 위버맨쉬로 기르기 위해선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자신을 경멸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내 악습이 내 자식의 유전자로 옮겨지면서 말이다.

     

     

     

     

    니체는 다른 책에서 100년 후엔 니체 학회가 만들어져 자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건 니체의 주장이 어렵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어 니체를 읽는 것을 조롱한 말이다. 이 책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당연히 살아온 환경과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읽어보시라. 분명 당신의 삶에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2017.6.13.

    김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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