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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분류 :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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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원의 문학사상 작성일 2016-08-29
  • 2016년 3월 28일,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2016년 시민인문강좌가 전호근의 〈한국철학, 1300년을 관통하는 사유의 거장들〉로 문을 열었습니다. 전호근 교수의 〈한국철학사〉 강의는 삼국시대 원효에서 현대의 장일순까지, 한국철학 1300년을 관통하는 사유의 거장들을 만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강좌는 총 8강으로 구성되어 3월부터 11월까지 매달 한 회씩 진행될 예정이며 웹진 〈나비〉 '오늘의 공부'에 강의의 한 대목과 함께 영상파일과 음성파일이 게재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한국철학, 1300년을 관통하는 사유의 거장들



    5강: 박지원의 문학사상



    5천년 최고의 문장, 박지원



    빛나는 문장, 자유로운 정신


    연암은 혈연이나 정치적 계보로 따지면 신분사회였던 조선에서 최상층을 차지하는 주류였습니다. 연암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 등 당시의 문인, 무인들과 마음을 터놓고 교유합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서자 출신으로 당시 조선사회의 아웃사이더였어요. 연암은 이런 사람들뿐 아니라 행랑채 하인, 참외 파는 사람, 돼지 치는 사람도 허물없이 사귀었습니다. 연암은 지주계급이었기 때문에 토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손수 자갈밭을 일구어 농사짓고 혼자서 밥을 지어먹으면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 집에서 밥 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졸졸 굶고 있다가 행랑채 하인한테 밥 얻어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참외 파는 사람 불러서 이야기 듣고 참외 얻어먹는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연암의 글에는 떠돌이 거지나 이름 없는 농부, 땔나무 하는 사람, 시정의 왈패 등 하층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광문자전廣文子傳」에서 광문廣文이라는 자는 거지인데 공맹의 도리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말 거간꾼한테서 우정을 찾기도 하고요. 사대부 간의 우정은 빛이 바랜 지 오래고, 말 거간꾼처럼 말을 사고파는 아주 얄팍한 이익에 놀아나는 자들의 우정이 가장 아름답다고 묘사합니다. 이들에게는 무슨 특별한 영웅적인 행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김홍연 같은 사람, 재산 다 팔아서 온 산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이름 큼지막하게 새기는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처럼 등장인물부터 그 이전의 작품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글을 쓴데다 착상 또한 기발하여 어렵지만 읽는 재미가 각별합니다.



    신랄한 풍자와 날렵한 비유


    연암의 글은 호탕함에서는 『맹자』와 견줄 만하고 신랄한 풍자와 날렵한 비유에서는 『장자』를 넘나듭니다. 어떤 글은 『맹자』 문장과 『장자』 식의 풍자를 합쳐놓은 듯합니다. 당시 대부분 사대부 문인들은 연암의 글을 잡글이라고 비난했고, 정조는 문체반정을 일으켜 연암의 글을 비판했습니다.


    「이존당기以存堂記」에는 장중거張仲擧라고 하는 아주 걸진 인물이 나오는데 이런 불한당도 여지없이 설복시키는 명쾌한 논리를 제시합니다.


    「공작관기孔雀館記」는 연암이 연경에 갔다가 처음 본 공작새를 글로 묘사했는데, 마치 눈앞에서 공작새를 보는 것같이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하풍죽로당기荷風竹露堂記」는 읽고 있으면 절로 무릎을 치게 하는 절묘한 비유와 운치가 돋보이는 글입니다. 


    「불이당기不移堂記」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게 하는 문장의 마술을 발휘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이야기라도


    연암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장자』 같은 문헌은 굉장히 거창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대자연의 소리를 표현한 거죠. 그런데 연암은 그런 거창한 소리가 아니라 아주 하찮은 소리를 소재로 비슷한 맥락의 글을 씁니다. 예를 들어 시골 사람이 잠 잘 때 내는 코고는 소리 같은 걸 소재로 이렇게 씁니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잠을 잤는데, 코고는 소리가 우렁차서 어떤 때는 토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휘파람 부는 것 같고 어떤 때는 탄식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우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불을 부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솥 안의 물이 끓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빈 수레가 덜컹 거리는 것 같고 숨을 들이 쉴 때는 드르렁거리며 톱질하는 소리가 나더니 내 쉴 때는 마치 새끼돼지가 씩씩대는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이 흔들어 깨우자 벌컥 화를 내면서 “나는 코를 곤 적이 없다.”고 하였다.


    - 『연암집』, 「공작관문고서」


    아무리 괴상한 사람이라도


    돌아보면 주변에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집 취미를 가진 사람 중에서 수석이나 난초가 아니라 중고구두를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연암집』에도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제가 연암을 주제로 강의할 때마다 꼭 이야기하는 인물이 김홍연인데, 「발승암기」는 연암이 김홍연이라는 사람을 두고 쓴 글입니다.


    까마귀는 온갖 새가 다 검은 줄 알고, 백로는 다른 새가 희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는구나.

    흰 새와 검은 새가 각기 옳다고 우기면 하늘도 그 송사에 싫증내겠네.

    사람은 모두 두 눈이 갖춰져 있지만 한 눈을 감아도 잘만 보인다.

    어찌 꼭 두 눈이라야 밝게 본다 하겠는가. 한 눈뿐인 사람들 사는 나라도 있다 하네.

    두 눈도 오히려 적다고 의심하여 도리어 이마에 덧붙이기도 하고,

    다시 저 관음불은 모습을 바꾸면 눈이 천 개나 되는구나.

    천 개의 눈이 다시 필요할 것인가? 장님도 검은 것은 볼 수 있다네.

    김군은 병에 걸린 사람으로서 부처에 의지하여 자기 몸 보존한다네.

    돈을 쌓아 놓고 쓰지 않는다면 거지의 가난과 다를 것이 뭐 있겠나.

    뭇사람들은 각기 자기 만족에 사는 법이니 꼭 서로 배울 것은 없지.

    대심김홍연의 자은 이미 뭇사람과 다른 길을 갔는데, 이 때문에 서로 의아하게 여긴 거지


    - 『연암집』, 「발승암기」


    김홍연은 원래 거부였는데 그 돈을 엉뚱한 데 다 써버립니다. 이 글에서 연암은 김홍연처럼 특이한 취향을 가지거나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마치 흰 새와 검은 새가 다른 것처럼 그저 취향이 다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벗이 될 수 있다


    학문하는 도리는 다른 것이 없다.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는 것이 옳다. 


    - 『연암집』, 「북학의서」


    연암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사귈 것처럼 살았습니다. 공자는 스승과 제자가 벗이라고 했잖아요. 성리학에서는 도를 아는 사람, 덕이 훌륭한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어디 길 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냐고 하죠. 지식에 위계가 있는 거죠. 그런데 연암 시대에 오면 이미 이익 같은 백과전서적 지식을 추구한 사람들이 나타났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집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어린아이한테라도 물어야 한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스승이 되고 누구나 벗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암이 벗들과 잘 지내기만 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연암에게도 평생의 악연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원래 가깝지 않으면 평생의 악연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안 생기죠. 사랑이 깊은 만큼 미움도 커지기 마련이니까요. 연암의 악연은 유한준兪漢雋, 1732~1811과의 관계가 어긋나면서 비롯됩니다. 유한준은 본래 연암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다음 글을 읽어보면 연암이 얼마나 유한준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물녘 용수산에 올라 그대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더군요.

    강물이 동쪽에서 흘러오더니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습디다.

    밤 깊어 달빛과 함께 돌아왔는데,

    정자 아래 늙은 나무가 허옇게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듯하기에,

    난 또 그대가 먼저 와 그 사이에 서 있는가 했다오.


    - 『연암집』, 「영대정잉묵, 답창애지오」


    暮登龍首山 候足下不至

    江水東來 不見其去

    夜深泛月而歸 亭下老樹 白而人立

    又疑足下先在其間也                  

      

    - 『燕巖集』, 「映帶亭賸墨, 答蒼厓之五」


    용수산은 개성 부근에 있는 산이에요. 거기서 친구인 창애蒼厓, 유한준를 기다리는데 친구는 안 오고 강물만 흘러가는 거죠. 기다리다가 밤이 깊어 내려옵니다. 내려오다 정자에 이르렀는데 그 옆에 허옇게 서 있는 나무가 마치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던 거죠. 친구인가 했더니 아니었어요. 연암의 이 글을 읽으면 누구라도 저 나무가 서 있는 곳에 같이 서고 싶을 정도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는 글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절친한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유한준이 자주 연암에게 자신의 글을 보내 평가를 부탁했는데, 연암의 평가가 높지 않았어요. 그로 인해 관계가 조금씩 멀어지다가 1802년, 연암이 66세 때 선친의 묘를 포천으로 이장하려 했는데, 유한준이 방해해서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글쓰기에 대한 견해가 달라서 사이가 벌어진 거예요. 이후 유한준은 연암의 『열하일기』를 두고 오랑캐의 연호를 쓴 책이라고 비방합니다. 연암의 글에 대한 이런 식의 비판은 인신공격에 가까운 악의적인 비난으로 비평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오랑캐의 연호를 쓴 책이라는 식의 비방은 굉장히 치명적이고 흑색적인 공격입니다. 예전에 소설가 정비석의 『자유부인』이라는 책이 북한 공산집단의 사주를 받고 쓴 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더랬어요. 말하자면 그런 저열한 방식의 비난에 가깝습니다. 오랑캐 연호를 쓴 책이라고 하는 건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빨갱이 책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죠. 온 세상 사람을 다 사귈 것처럼 사람을 좋아했던 연암도 이렇게 절친했던 친구와 원수지간이 된 걸 보면 우정이란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리워 형을 바라보다


    우리 형 얼굴 수염 그 뉘를 닮았던가 / 我兄顔髮曾誰似 

    아버지 생각나면 우리 형 쳐다봤지 / 每憶先君看我兄

    이제 형 그리우면 어디에서 볼 것인가 / 今日思兄何處見

    두건에 옷 걸치고 냇물에 날 비쳐보아야겠네 / 自將巾袂映溪行 


    - 『燕巖集』, 「映帶亭賸墨, 燕岩憶先兄」


    연암은 굉장히 예민한 사람이에요. 1787년 51세 때 큰형 박희원朴喜源이 58세의 나이로 죽습니다. 그러고 나서 지은 시가 「연암억선형燕岩憶先兄」입니다. 읽고 있으면 눈물이 나는 시입니다. 이해에 아내 이씨가 죽자 절구 20수를 짓고 그 뒤로 죽 혼자 지냅니다. 


    연암을 많이 도와주었던 홍대용은 연암보다 여섯 살이 많았는데 아주 절친했어요. 1782년 홍대용이 56세로 세상을 떠나자 연암은 음악을 끊어 버립니다. 홍대용은 철현금의 명인, 음악의 명인이었죠. 연주를 하면 홍대용이 생각나니까 음악 연주를 하지 못합니다. 이런 예민한 감수성이 「연암억선형」 같은 시를 낳았겠지요.


    「연암억선형」은 연암이 세상을 떠난 형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지었지만, 형의 얼굴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먼저 보입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보고 싶으면 형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되는 거죠. 형의 얼굴 생김새나 수염이 아버지의 모습과 닮았으니까요. 그렇게 아버지 생각이 나면 형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리움을 달랬는데, 이제 그 형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냇가에 가서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면서 자기 얼굴에 혹시 형의 그리운 모습이 보이는지 찾는 겁니다. 냇물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며 형과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 연암의 모습에서 아버지와 형, 자신을 하나로 잇는 감수성의 깊이가 보입니다. 










    (강의 내용 중 일부)




    저자소개

    전호근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맹 유학과 조선 성리학을 전공했고, 16세기 조선 성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은사이신 안병주 선생과 함께 『역주 장자』를 펴냈다. 아내와 더불어 『공자 지하철을 타다』를 쓰고, 아이들을 위해 『열네 살에 읽는 사기열전』을 썼다. 또 『장자 강의』, 『맹수레 맹자』,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공저), 『강좌한국철학』(공저), 『논쟁으로 보는 한국철학』(공저), 『동양철학산책』(공저), 『동서양고전의 이해』(공저), 『유학, 시대와 통하다』(공저), 『철학자가 사랑한 그림』(공저) 등을 펴냈다. 주로 동아시아의 고전을 해설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만큼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복원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읽을 책의 글자 수를 세는 버릇도 그래서 생긴 벽(癖). 불멸의 고전인 유가의 십삼경을 모두 해설하는 것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아 있고, 문자의 기원을 찾는 일은 덤으로 즐기는 여유다. 미래를 기약하면서 과거를 이야기하는 사마천과 정약용의 수법을 좋아한다. 최근 한국 사회의 비행을 보면서 몹시 슬프고 부끄럽다. 할 수 있다면 개토의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들어 아이들이 돌아오게 하고 싶다. 가장 힘이 센 건 기억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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