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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분류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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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석남 시집 작성일 2018-01-12
  • 장석남 지음 ㅣ 창비, 2017-12-08
  • 소풍



    소매 끝으로 나비를 날리며 걸어갔지

    바위 살림에 귀화歸化를 청해보다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아래위 옷깃마다 묻은 초록은 무거워 쉬엄쉬엄 왔지

    푸른 바위에 허기져 돌아왔지

    답은 더디고





    불멸



    나는 긴 비문碑文을 쓰려 해, 읽으면

    갈잎 소리 나는 말로 쓰려 해

    사나운 눈보라가 읽느라 지쳐 비스듬하도록,

    굶어 쓰러져 잠들도록,

    긴 행장行狀을 남기려 해

    사철 바람이 오가며 외울 거야

    마침내는 전문을 모두 제 살에 옮겨 새기고 춤출 거야


    꽃으로 낯을 씻고 나와 나는 매해 봄내 비문을 읽을 거야

    미나리를 먹고 나와 읽을 거야


    나는 가장 단단한 돌을 골라 나를 새기려 해

    꽃 흔한 철을 골라 꽃을 문질러 새기려 해

    이웃의 남는 웃음이나 빌려다가 펼쳐 새기려 해

    나는 나를 그렇게 기릴 거야

    그렇게라도 기릴 거야





    입춘 부근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쫓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파란 돛



    바다는

    어디서부터 가져온 파도를 해변에, 하나의 사소한 소멸로써

    부려놓는 것일까

    누군가의 내부를 향한 응시를

    이 세계의 경계에 부려놓는 것일까


    바다는 질문만으로 살아오르고

    함성을 감춘 질문인 채 그대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천상 돛을 하나 가져야겠기에

    쉬지 않고 사랑을 하여

    파란 돛을 얻는다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저자소개

    저자 · 장석남
    196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산문집 『물의 정거장』 『물 긷는 소리』 『시의 정거장』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7년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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