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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분류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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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희경 시집 작성일 2018-04-17
  • 유희경 지음 ㅣ 문학과지성사, 2018-04-06
  •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어떤 인칭이 나타날 때 그 순간을 어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어둠을 모래에 비유할 수 있다면 어떤 인칭은 눈빛부터 얼굴 손 무릎의 순서로 작은 것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내며 드러나 내 앞에 서는 것인데 나는 순서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사실은 제멋대로 손 발 무릎과 같이 헐벗은 것들을 먼저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칭이 성별과 이름을 갖게 될 때에 나는 또 어둠이 어떻게 얼마나 밀려났는지를 계산해보며 그들이 내는 소리를 그 인칭의 무게로 생각한다 당신이 드러나고 있다 나는 당신을 듣는다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지





    좋은 것 커다란 것 잊고 있던 어떤 것



    이렇게 추울 때 고양이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골목은

    그 골목의 어둠은 좋은 것

    좋고 위험한 것 위험하고

    아슬한 것 헤드라이트를 켜고

    지나간 자동차의 뒷모습처럼 

    커다란 것 그 속에 숨어 있는

    어떤 것 이렇게 추울 때는

    옆을 더듬게 되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없으므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좋은 것 어쩔 수 없이 그런 것

    고양이가 운다 추워서 그런가 봐

    말해보는 것 고양이만을 위한

    따뜻한 물그릇을 놓는 것 물그릇 속

    물이 얼어붙는 것 따뜻했던 얼음이

    발에 채었을 때 주르륵 미끄러져

    길 한복판에 놓이는 이상한 것

    이상하고 깨질 것만 같은 것

    깨질 것만 같은 소리에 놀란

    아무것도 아닌 당신을 달래려고

    다시 옆을 더듬게 되는 것

    아무것도 아닌 당신을 달래려고

    다시 옆을 더듬게 되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을 더듬었다고

    씁쓸하게 웃어보는 그런 것 그것은

    커다란 것 헤드라이트를 켜고

    지나가는 자동차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춥고 커다란 것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 잊고 말하지 못한 것

    실은 고양이가 아니어도 좋은 것

    골목이 자동차의 뒷모습이

    물그릇과 당신이 아니어도 좋은 것

    그것은 역시 좋은 것 좋아서

    커다란 것 다시 잊고 말 어떤 것





    봄밤, 참담



    그는 여기에 없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악수하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없는 그는 어쩌면,

    없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닳아가는 무게는 들릴까요

    나는 오한을 음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자를 끌어당기는 기분이 손끝에 있고

    문자가 언어로 휘어지는 자극은

    누군가 적고 버린 其間입니다


    안부 속으로 끌려갔어요 그는

    잘못이 없는 사람과

    용서해야 하는 사람 사이로

    꺼낸 의미와 집어넣은 과거가 

    서로를 당겨 참담한 거리를 만들고

    그늘은 차이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기억을 고르고 셈을 치르듯

    더 큰 것의 주인을 재는 동안

    소리 없는 일화가 만개해

    목숨을 슬프게 합니다

    나는 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추억이라니

    좀 해볼 만하지 않은지

    얇은 옷 속에서 떨고 있는


    누가 생애를 깨고 있는 것입니까

    어두운 악수는 끝나지 않고,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테니

    좀더 어두워지는 이 거리로,

    누구든 돌진하는 이 세계로

    남아 있는 나에게로,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저자소개

    저자 · 유희경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이 있다. ‘작란’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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