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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분류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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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은 바로 그곳에 머문다네. 그리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작성일 2018-09-14
  • 정용준 지음 ㅣ 문학동네, 2018-04-30

  • 스트랜딩


    리스본에서 해가 지는 방향으로 천 킬로미터 떨어진 대서양의 화산섬 마데이라 남쪽 해변. 그곳엔 많은 것이 떠내려온다. 주인을 잃은 보석이나 금화, 열대의 열매와 부러진 나뭇가지, 지역을 추측할 수 없는 장신구들과 조각상에서 떨어져나온 돌조각들. 때로는 머리 없는 남자가, 때로는 발목이 묶인 흑인이. 사람이 없는 빈 배, 해초에 휘감긴 트랜지스터라디오, 깨진 전구, 부서진 무전기. 어떤 날엔 잉크가 번진 일기장이 발견되기도 한다. 눈을 감고 모로 누운 검은 말과 회색 코끼리, 송곳니를 드러내고 죽은 표범과 부패한 산양의 얼굴은 목격자들로 하여금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한다.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고, 경이로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복잡한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해변엔 그 어떤 것보다 크고 놀라운 것이 누워 있다. 


    꿈꾸는 남자. 보트 갑판에 누워 땀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속눈썹이 떨리고 눈꺼풀 안쪽의 안구가 부드럽게 일렁인다. 시몬 엘리엇. 미국인 화산학자인 그는 시간과 공간이 규정되지 않은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뜨고 있다. 망망한 바다에 뜬 작은 무동력선. 선수船首에 서서 까만 바다를 응시하는 눈빛이 불안하다. 한 줄의 흐릿한 수평선을 사이에 놓고 구름도 없고 파도도 없는 고요한 바다.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갑판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바다에 빠진 동료. 다녀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연인. 물속으로 걸어간 뒤 다시는 나오지 않은 여자. 왼편 먼바다로부터 높고 커다란 파도가 다가온다. 수면을 밟고 배를 향해 달려드는 검은 물의 장벽. 시몬은 파도를 피해 몸을 둥글게 말고 벽을 향해 돌아눕는다. 


    시몬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반년 넘게 같은 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울하다는 감정. 지긋지긋한 그 느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무력감을 느낀다. 물결이 움직일 때마다 군청색 하늘이 규칙적으로 흔들린다. 그는 몸을 감고 있는 모포를 걷어내고 일어섰다. 푸른 새벽이다. 파도가 해변을 적시고 모래알들이 물살을 따라 쉼없이 휘돌고 있다. 큰물이 절벽과 암반을 때리고 흰 거품을 내며 부서진다. 보트가 가볍게 이는 돌풍에 흔들렸다. 시몬은 균형을 잃고 비틀대며 엔진 커버를 붙잡았다. 그 순간, 청각이 예민하게 곤두섰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미세하게 달랐다. 부산스럽게 지저귀는 물새들의 울음과 파도 소리 틈새로 이질적인 소리가 끼어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귀를 기울여 소리에 집중하며 서서히 등을 돌려 반대쪽 해변을 봤다.


    진지를 습격당한 보초병처럼 꼼짝도 못하고 서서 시몬은 그것들을 보고 있었다. 손등으로 몇 번이나 눈자위를 문질렀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고래였다. 한 마리도 아닌 수십 마리의 고래가 해변에 누워 있었다. 절반은 물에 절반은 모래에 몸을 걸치고 누워 꼬리지느러미를 위아래로 팔딱거리며 괴이한 소리를 내지르는 고래들. 그는 숨을 죽인 채 홀린 듯 우뚝 서서 눈으로 셈을 했다. 5미터 크기의 파일럿고래 스물여섯 마리. 그들은 그 이름처럼 날개를 잃고 불시착한 경비행기처럼 보였다. 시몬은 떨리는 손끝을 꽉 말아 쥐고 그들 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해변에 감도는 정적. 고래들이 내는 음성은 미세하고 높아 바람 소리에 가까웠다. 그 모습은 음소거 된 전위적인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고요함 속에 경건한 기운과 비극적인 정서가 뒤섞여 있었다.


    파일럿고래 사이에 한 마리의 거대한 흰수염고래가 있었다. 그것의 크기를 수치화할 순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몸을 지닌 생물, 바위보다 큰 심장, 파이프만큼 두꺼운 동맥, 심해 밑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수면 밖에서 숨을 통하는 신비한 물의 포유류. 차라리 바위라고 한다면, 산이라고 한다면 믿길 것이다. 산 것이 어떻게 이토록 거대하단 말인가. 이 생물의 존재 방식을 눈으로 목격하고 확인한 자가 있다면, 길이와 부피와 무게를 측량해 뭔가를 알아낸 자가 있다면, 생태를 연구하고 탐구해서 무엇인가를 밝혀낸 자가 있다면, 그 깨달음은 한 가지일 것이다. 불가사의하다는 것.


    시몬은 흰수염고래의 누운 몸체를 올려보며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폐허가 된 신전의 무너진 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너무도 시적인 광경이어서 현실감각으로는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으로서는 결코 목격해서는 안 될 신령한 장면을 본 것 같아 두려움마저 느꼈다. 신과 자연의 착오와 실수로 벌어진 사건은 아닐까. 그는 이 상황을 정상적으로 인지할 수 없어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려 했다. 이것은 불길한 징후인가? 종말이 오는 걸까? 아니, 내가 진짜로 미쳐버린 걸지도 몰라. 아니면 여전히 꿈속인지도……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믿을 수 없다. 어쩌면 현실이 아닐지도 몰라. 그는 축축이 젖은 손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어둡고 젖은 피부. 물로 변한 바위 같은 느낌의 몸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입속에 박힌 하얀 이빨과 보랏빛 혓바닥. 겉보기엔 아무런 외상이 없었지만 죽어가고 있었다. 흰수염고래는 머리의 일부를 모래에 파묻고 한쪽 눈을 치켜뜬 채 허공을 바라봤다. 느리게 닫히고 열리는 눈꺼풀 너머의 움직이는 눈동자가 남자의 머리보다 컸다. 동공은 물속에 잠긴 까만 암석처럼 보였는데 깊은 곳에 흐릿한 안개 같은 것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몬은 얼이 빠진 얼굴로 한참 동안 그 눈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구토를 했다. 비위가 상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큰 충격에 폐와 심장에 강하게 압박이 느껴진 것이다. 그는 고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열등감을 느꼈다. 경외감, 당혹감, 소름 끼침을 한꺼번에 느꼈다.


    그때였다. 흰수염고래의 입 주위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고래의 입에서 나와 모래 속으로 파고들었다. 시몬은 깜짝 놀라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모래가 몇 번 들썩인 후 무덤처럼 둥글게 부풀어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색의 물체가 튀어나왔다. 처음엔 그것이 고래의 새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래라고 하기엔 체구가 작았다. 머리와 몸통, 팔과 다리가 붙은 모양새를 보면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상한 점이 많았다. 상어처럼 미끈하고 단단한 크림색 피부, 눈은 흰자가 없이 온통 푸른빛이 도는 눈동자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눈꺼풀은 없지만 눈 안에 얇은 막이 덮여 있었다. 입은 질기고 불투명한 가죽 같은 것으로 메워져 있었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는 개구리처럼 물갈퀴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다리처럼 보이는 두 개의 촉수로 잠깐 동안 직립 상태를 유지하더니 이내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저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시몬은 난생처음 보는 생물을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에 몸을 숙여 살펴봤다. 둘 사이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것은 쓰러진 상태로 시몬을 올려보고 있었다. 눈은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암반 틈에 고인 푸른 물구덩이 같은 그 눈 속엔 의식과 정신이 있었다. 분명히 인격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처음 보는 동물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직관처럼 그는 호감과 설명할 수 없는 연민을 느꼈다. 그것은 손을 앞으로 뻗고 눈을 껌벅이며 입을 움직였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 듯했다. 헐떡이고 있었고 숨이 차 보였다. 시몬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바닷물을 손으로 떠 그것의 머리에 끼얹었다. 소용없었다. 그것은 계속 떨었다. 시몬은 그것의 어깨를 만져봤다. 바람이 가득찬 공을 만지는 듯 탄성이 느껴졌다. 표피는 열에 녹아 부드러워진 고무처럼 부드러웠지만 흘러내리지 않는 단단한 피부였다. 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것의 목과 다리 아래에 팔을 집어넣어 들어올렸다. 가벼웠다. 팔다리가 가는 작은 소년 정도의 무게였다. 체구는 큰데 이토록 가볍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미세한 숨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맞춰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손목에 손가락을 대보니 아주 느리지만 맥박도 느껴졌다.


    먼 곳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 시몬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아침이 발아오고 있었다. 해안 도로에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도착했고, 조깅을 하던 사람들이 놀란 듯 소리를 지르며 해변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고, 발 빠른 기자 두 명이 높은 곳에 서서 해변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시몬은 도로를 등지고 돌아섰다. 어째서인지 품에 안은 정체불명의 생물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몬은 모포로 그것의 몸을 덮고 빠른 걸음으로 해변 뒤쪽으로 걸어가 집으로 향하는 샛길로 빠져나갔다. 


    시몬은 가죽소파에 누운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케이블 선으로 팔과 다리를 묶었다. 그것은 식물인간처럼 잠만 잤으며 위험과 가장 거리가 먼 존재처럼 느껴졌다. 시몬은 가끔 그것의 코에 귀를 갖다 대었다. 호흡은 규칙적이었고 평온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었지만 이틀 사이에 눈에 띄게 외형이 변모했다. 메워져 있던 콧구멍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크림색 젤리를 뒤집어쓴 것 같던 반짝이는 피부에서는 광택이 사라졌고 구운 도기처럼 희고 매끄럽게 변했다. 시몬은 밑으로 축 늘어뜨린 그것의 팔목에 살며시 손가락을 올렸다. 희미하게 맥박이 느껴졌다. 툭툭 뛰는 박동은 아니었고 깊은 곳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부드러운 물과 같은 흐름이었다. 시몬은 팔짱을 끼며 그것을 바라보다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주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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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저자 · 정용준
    소설가.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 <굿나잇, 오블로>를 발표하며 데뷔,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장편소설 《바벨》 《프롬 토니오》등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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