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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분류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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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작성일 2019-02-11
  • 윤이형 외 지음 ㅣ 문학사상사, 2019-01-18
  • 그들의 두 번째 고양이가 죽던 날, 그들은 오랜만에 함께 있었다. 


    비가 올 것처럼 흐린 날이었다. 늦은 오후 희은이 사무실에서 다음 날 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초록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지금 아빠한테서 전화 왔는데, 오늘 아침에 순무가 죽었대.


    아, 희은은 생각했다. 아.


    초록은 학원을 빠지고 아빠에게 가겠다고 했다. 정민이 장례식장에 데려갔다가 도로 집에 데려다줄 모양이었다. 희은은 탁상 달력을 보았다. 아이는 다음 주부터 중간고사였지만, 하루쯤은 괜찮을 것이었다. 순무라면, 순무가 세상을 떠났다면 가야 했다.


    그래, 아빠 집에 도착하면 전화해, 출발할 때도 전화하고. 희은이 말하자 초록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는 같이 안 가? 순무잖아. 


    엄마도 갈까?


    아빠가, 엄마도 혹시 같이 올 건지 물어보라는데?


    희은은 잠시 생각했다. 이제는 본 지 너무 오래된 순무의 하얀 목덜미가 떠올랐다. 그 부분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커피에 비해 우유를 너무 많이 넣은 아이스 카페라테가 생각나곤 했다. 하지만 순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정민에게 다른 동행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은은 생각했다.


    그랬구나. 그럼 엄마도 같이 갈까?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


    초록은 아까보다 목소리가 더 잠겨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엄마 차로 가자. 아빠한테 한 시간쯤 뒤에 도착한다고 해. 


    알았어.


    초록아, 슬퍼?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마. 순무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그리고, 순무는 나이가 많았잖아.


    응.


    엄마가 금방 갈게.


    희은은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뒤 일찍 퇴근했다. 집으로 운전해 가면서 희은은 문득 생각했다.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마, 라는 말은 얼마나 이상한가. 


    *


    샴고양이인 순무의 원래 이름은 윌리엄이었다. 윌리엄이라니, 고양이 이름치고는…… 하고 희은은 생각했었다. 그 집의 다른 고양이 이름은 엘리자베스로, 러시안 블루였다. 원래 반려인 부부는 아내가 임신을 하자 품종묘 두 마리를 각각 다른 집에 탁묘 보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엘리자베스는 다른 집으로 갔다. 윌리엄은 다섯 살 때 희은의 집으로 왔다. 약속했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희은이 메일을 보냈다. 윌리엄은 잘 지내고 있어요. 예쁜 아가는 건강히 태어났겠지요?


    부인이 찾아온 건 그다음 해가 되어서였다. 그때는 희은도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은 다음이었다. 이유식을 먹은 초록이 거실 매트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부인은 초록에게 줄 영국제 장난감 자동차 세트와 슈니발렌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과자를 선물로 가지고 왔다. 윌리엄…… 하고 불렀지만 안아보지는 않았다. 한동안 서로의 아기 얘기를 하다가 부인이 그만 가보겠다고 일어나서야 희은은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그건 탁묘가 아니라 입양이었던 모양이었다. 자동차 세트와 슈니발렌은 ‘미안합니다. 잘 부탁합니다’라는 뜻이었다. 부인이 돌아간 뒤 희은은 둥그런 통에서 슈니발렌을 꺼냈다. 통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씌어 있었다. ‘슈니발렌 매장에서 제공되는 원목의 나무망치[별매]를 이용하여 가볍게 제품을 깨뜨려 적당한 크기로 부숴줍니다. (나무망치가 없을 경우 그와 비슷한 용도의 단단한 물체를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반드시 깨뜨린 후 드셔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나무망치[별매]가 없었으므로 희은은 집에 있던 쇠망치를 가져와 과자를 부쉈다. 무언가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상적’, ‘주류’ 같은 단어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보통은 다들 그러지……. 희은은 곰곰 생각하다가 고양이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윌리엄은 그날 순무가 되었다.


    순무라니, 상당히 괘씸해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사람한테 화난 거 얘한테 푸는 거 아니야? 정민은 말했고, 하지만 어울리잖아? 희은은 되물었다.


    순무는 순하고 무르고 둥글둥글한 성격의 고양이였다. 희은은 순무를 어디에도 보내지 않았다. 초록이 태어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막 새끼를 낳은 어미 짐승의 심정이 되어, 하지 마! 올라오지 말라고!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아기 침대를 막아서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순무는 단 한 번도 아이를 발톱으로 긁거나 할퀸 적이 없었다. 초록이 신생아일 때부터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그랬다.


    순무는 스물한 살까지 살았다. 스물한 살이라니, 어디 기네스북에 올라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검색해봤더니, 옛날에 서른여덟 살까지 살다 간 다른 고양이가 있었다.


    미안해, 순무, 비교해서.


    그래도 오래 살았지.


    응. 짐작한 것보다는 상당히.


    너무, 겁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해. 순무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는다는 것에.


    그랬지. 하지만 안 그럴 수 없었잖아.


    그렇지.


    어디가 아팠어?


    복막염이었어.


    병원에, 오래 있었어?


    후…… 한 일주일? 그쯤 있다가 퇴원하라고 해서 했어. 기운을 차릴 듯 차릴 듯하다가도,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서였는지 집에 오고 이틀 만에 그렇게 됐네.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조금은 했어, 입원해 있는 동안에.


    뒷좌석에 앉은 정민이 한숨을 쉬었다. 희은은 음악이라도 좀 틀까 생각했다. 정민과 대화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하지만 음악을 트는 것도 어쩐지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의 옆에 놓인 종이 상자에는 순무의 몸이 담겨 있었다. 초록은 조수석에 앉아 말없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희은이 곁눈으로 보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희은은 이제 완연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짐작해보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직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다.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날이 저물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7년 전에 갔던 곳과는 다른 업체였다. 장례지도사가 나와 그들을 맞았다. 절차를 간단히 안내한 그가 순무의 몸을 상자에서 꺼내 단 위에 올려놓았다. 흰색 조화로 장식된 단에는 미리 전송받은 순무의 사진을 깔아둔 태블릿이 세워져 있었다. 향이 피워지고, 낮은 볼륨으로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초록은 결연한 표정으로 참고 있었다. 정민은 초록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희은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순무의 몸은 깨끗했다. 투실투실하던 옛날보다 살이 눈에 띄게 빠진 것이 낯설 뿐이었다. 녀석은 조금도 죽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무르고 순해 보였다. 그들이 함께 살던 시절 거실 매트 위에 누워 태평하게 잠들어 있던 모습 그대로여서, 흔들어 깨우면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배를 만져 달라고 자세를 바꿀 것만 같았다.


    이제 순무가 먼 길 떠납니다.


    장례지도사가 그렇게 말하고 순무의 몸을 운반대에 올려 소각로로 데려갔다. 희은은, 순무야 미안해, 속으로 몇 번이나 속삭였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너에게 마음만큼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임신을 했다고 고양이를 다른 집으로 보내는 것이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면, 이혼을 했다고 다른 집으로 보내는 것은 책임 방기가 아닐까. 고양이는 사람이 아니라서 면접 교섭 같은 것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미안한 마음은 7년 전과 같으면서도 조금 달랐다. 미칠 듯한 죄책감이 예리한 유리 조각처럼 출렁거리며 몸속을 찔러대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더 뭉툭하고, 둥그렇고, 차분한 슬픔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커져갔다.


    초록은 참는 것을 포기하고 아빠에게 안겨 울었다. 정민도 안경을 벗고 손으로 눈을 닦아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서서 각자의 방식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들에게는 첫 번째 고양이가 있었다. 치커리. 남들이 보기엔 흔하디흔한 데다 다 똑같이 생긴 갈색 망토를 입은 코리안쇼트헤어 종이었지만 희은은 비슷한 고양이 천 마리를 섞어놓아도 치커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치커리는 연어를 좋아하고 닭가슴살을 싫어하는 확실한 취향을 지니고 있었고, 희은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라디오헤드Radiohead,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의 톰 요크를 연상시키는 시니컬한 분위기가 있었다.


    치커리는 희은의 첫 번째 고양이였다. 희은이 결혼을 하면서 치커리는 정민에게도 첫 번째 고양이가 되었다. 치커리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지만 나중에 집에 들어온 순무와 그다지 잘 지내지는 못했다. 매일같이 발톱을 드러내고 할퀴어대며 싸우지는 않았으나 여자 중학생과 아저씨에게 함께 산책을 하라고 한 것처럼 한쪽은 아이고, 싫어, 하는 분위기로 도망 다녔고 다른 한쪽은 아니 왜 나를 싫어하니, 내가 뭘 했다고, 하는 분위기로 따라다녔다. 두 명 이상의 반려인이 두 마리 이상의 고양이를 기르면 고양이가 반려인을 선택하는 일이 가끔씩은 일어난다고 했다. 치커리는 희은은 선택했다. 순무는 정민을 선택했다. 각자 자기가 선택한 사람의 무릎에만 올라가고 간식을 달라고 비비고 애정을 표현했다. 어떤 기준이나 근거에서 그런 선택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치커리는 7년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급성신부전이었다. 신부전이라도 관리를 잘 하면 완쾌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치커리는 병을 발견했을 때 이미 그러기 힘든 상태였다. 종양으로 보이는 덩어리들이 몸속에 가득했고 한쪽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으며 심한 빈혈도 있어 공격적으로 수액 치료를 할 수가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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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저자 · 윤이형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단편소설 〈검은 불가사리〉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 《러브 레플리카》, 중편소설 《개인적 기억》, 청소년소설 《졸업》, 로맨스소설 《설랑》 등을 펴냈다.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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