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롭메뉴

컨텐츠 시작

오른쪽 시작

참고분류 : 인문

글보기

  •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유와 미학 작성일 2018-03-13
  • 데이비드 건켈 지음 | 문순표 옮김 ㅣ 포스트카드, 2018-03-06
  • 서문


    이 책의 제목인 『리믹솔로지에 대하여Of Remixology』는 분명 독창적이지 않으며, 사실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그 유래를 세 가지 원천들로 추적할 수 있는데, 그것들은 일종의 “삼중적 명구銘句”를 구성한다이 개념 또한 데리다를 복제하고 표절한 것이다.

    (1) “리믹솔로지remixology”라는 말은 여타 원천들에서 전유했고 차용했으며 훔쳐오기도 했다. 예컨대 이 말은 자메이칸 더브Jamaican dub에 관한 폴 설리번Paul Sullivan의 책 『리믹솔로지: 더브 디아스포라를 찾아서Remixology: Tracing the Dub Diaspora』의 제목으로 이미 사용된 바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그 말은 콜라주, 컷업, 레디메이드, 리믹스로 이루어진 예술과 그것의 예술성을 식별하기 위해 마크 아메리카Mark Amerika가 발전시키고 활용한 일종의 키워드였다. 하지만 불만스럽게도 이런 사용조차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그 용어는 이미 디제이DJ 문화 속에서 유통되고 댄스클럽 이벤트와 매시업 파티를 위한 홍보물에서 활용되곤 했다. 겉보기에 혼란스럽고 혼합된 이 계보에서 분명한 어떤 것이 있다면, “리믹솔로지”라는 용어 자체가 그것이 다루고자 하는 바로 그 문제 속에, 즉 가용한 원천 자료들의 전유와 재구성으로 인해 기원과 원본성에 대한 물음들이 믹스되어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문제적 상황 속에 이미 휘말려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2) 비록 “리믹솔로지”라는 용어가 이러한 여타 원천들을 표절해서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사용할 것이다. 일상적 용법에서 단어의 끝 부분에 그리스어 ‘로고스’λόγος, logos에서 유래한 접미사 “-ology”를 붙이는 것은 “~에 관한 연구” 또는 “~에 관한 학문”을 뜻한다. 따라서 “theology”, “biology”, “sociology” 같은 용어들은 보통 “신학”, “생물학”, “사회학”으로 정의된다. 이 절차에 따르면, “remix”와 “logos”를 결합하거나 혼합하는 것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리믹스학”을 뜻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리믹솔로지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이 다른 무엇보다도 이 학문의 용어들을 정식화하는 데에, 즉 용어법을 정의하고 이론을 확립하며 연구 방법론을 궁리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일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비록 이 기대가 전적으로 타당하긴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로고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한 중요하고 역사적인 재구성 또는 리믹스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이 문제에 관한 고찰 속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로고스는 처음에는 “담화”를 의미했으나, 이후에는 “논리”, “합리성”, “학문” 등으로 번역되고 (재)해석되었다. 담화로 이해된 로고스는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것을 그 자체로 나타내고 드러내는 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정식화된 “리믹솔로지”는 “리믹스학”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리믹스가 이미 명백히 드러나 있어서 탐구의 대상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 자체에 대해 검토해야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리믹스학”으로부터 리믹스학의 학문성에 대한 탐구로 미묘하게 강조점을 이동하는 것은 전치사 “대하여of”에 의해 한층 더 강조된다. 

    (3) 이 책의 제목이 단순히 『리믹솔로지Remixology』가 아니라 『리믹솔로지에 대하여Of Remixology』인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이처럼 작고 겉보기에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전치사를 포함시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것은 책의 주제가 리믹스에 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연구가 아니라, 오히려 리믹스 연구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자 평가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사이버네틱스Cyernetics』로 “통제와 소통에 관한 새로운 학문”의 창시자임을 선언한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처럼 새로운 학문의 성립을 소박하고 다소 무모하게 선포하는 대신에, 이 책은 바로 이런 식의 기획을 성찰하고 그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이것은 한낱 변덕스러운 제스처가 아니다. 리믹솔로지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리믹스가 이미 원본성, 혁신성, 부계성에 관한 일상적 가정들을 약화시키는 물음이자 작업이라는 점에서 이는 필연적인 것이다. 

    둘째,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는 것은, 제목의 전치사적 형식 또한 또 다른 원천,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Of Grammatology1976에서 유래되고 표절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전반적인 “프로그램”은 데리다가 “프로그램”이라는 소제목 아래에서, 그의 텍스트를 처음으로 시작한 하나의 진술을 인용하고 이를 재구성함으로써 어쩌면 가장 잘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그 필연성이 거의 인지되지 않는 완만한 운동을 통해서, 적어도 약 2천 년 전부터 언어라는 이름 아래 집결되려는 경향이 있었고, 또 마침내 집결에 도달한 모든 것은 기록écriture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로 옮겨지거나 최소한 그 이름 아래 요약되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2000년간 언어라는 이름 아래 집결되었던 모든 것이 20세기 마지막 수십 년 동안 기록이라는 일반적 개념으로 옮겨지게 되었다면, 지금 21세기 초에는 기록이라는 개념에 의해 집결되고 제한되었던 모든 것이 이제 리믹스라는 이름 아래 옮겨지고 요약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론

    “리믹스”는 일반적으로 대중가요,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텍스트, 웹 데이터와 같은 기존 미디어 콘텐츠를 재조합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실천을 가리킨다. 비록 디지털 오디오를 통해 처음 대중화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널리 이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전 지구적으로 댄스 플로어 위에서 흘러나왔지만, 리믹스는 디지털 미디어나 대중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메이칸 더브와 힙합의 턴테이블 실천들을 비롯하여,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fer의 구체음악musique concrete, 존 오스왈드John Oswald의 플런더포닉스Plunderphonics, 네거티브랜드Negativland, 에벌루션 컨트롤 커미티Evolution Control Committee의 오디오 콜라주 시도들은 아날로그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이러한 특정한 별칭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실천들은 미디어 제작과 콘텐츠 창조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발전되고 추구되어 왔다. 예컨대 문학적 리믹스에는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Seth Grahame-Smith가 제인 오스틴의 고전 소설 『오만과 편견』을 B급 좀비 펄프픽션으로 재조합한 것이 있고, 시각적 리믹스로는 세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가 버락 오바마의 2008년 미국 대선 캠페인을 위해 만든 “희망” 아이콘 포스터가 가장 유명할 것이며, 데이터 매시업으로는 사용자들에게 더 가치 있고 통합된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기 위해 둘 이상의 인터넷 자료에서 콘텐츠를 전유하고 조합하는 웹 2.0을 구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동시대 문화의 모든 측면을 가로질러 이러한 실천이 무제약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며, 사이버펑크 SF소설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리믹스를 21세기를 특징짓는 특성으로 보았다.

    “리믹스는 디지털 자체의 본질이다. 오늘날 끝없이 재조합되고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창조적 산물은 ― 이 말 역시 또 다른 구식 용어가 아닐까? ― 무한히 생성된다. (…) 부틀렉, 리믹스, 매시업과 같은 재조합은 우리가 직면한 두 세기의 전환기를 특징짓는 중심점이 되었다.”

    이러한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대중성 때문에 리믹스에 대한 비평적 반응들은 외견상 상반되는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한편에는 “몽상적 표절자들utopian plagiarists”, 카피레프트주의자들, 리믹스 팬들과 프로슈머들Prosumers이 있다. 그러한 개인들과 조직들은 매시업, 리믹스, 여타의 컷업과 콜라주 실천들이 미디어 콘텐츠를 창조하고 유통하기 위한 새롭고도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찬양한다. 이쪽 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적어도 처음에는 거의 혹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색깔의 캐릭터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젝 어반 비트 클럽Zizek Urban Beats Club과 샌프란시스코의 클럽 부티Club Bootie 같은 문화 단체부터, 걸 토크Girl Talk, 후앙 브라질João Brasil, 헬 예 파티 타임Hell yeah Party Time, 어딕티브 TVAddictive TV 같은 디제이DJ와 브제이VJ도 있으며, 윌리엄 깁슨, 캐시 애커Kathy Acker, 마크 아메리카Mark Amerika 같은 작가와 시인뿐만 아니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같은 다국적 기업도 여기에 포함된다. 한 주제를 소소하게 변주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물들과 집단들을 예상 밖의 영향력 있는 연합으로 한데 묶어주는 것은 혁신적이고 유용하며 즐거운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그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길과 기회 또한 열어주는 창조적 실천에 대한 공통의 관심이다. 다큐멘터리 《찢어라! 리믹스 선언Rip! A Remix Manifesto》의 감독 브렛 게일러Brett Gaylor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터넷은 나라는 섬과 전 세계를 연결시켜주고, 나의 생각과 수백만 명의 다른 생각을 소통시켜준다. 게다가 전 세계의 문화를 다운로드하고 그것을 다른 무언가로 변형시킬 수 있는, 미디어 독해능력을 갖춘 세대가 출현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언어를 리믹스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것들, 정치적인 것들, 새로운 것들이 모두 인터넷에 다시 업로드된다. 이제는 소비자가 미래의 대중 예술을 만드는 창조자이기에, 창조적 과정이 그 산물보다 더 중요해졌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저자소개

    저자 · 데이비드 던켈
    미국 노던 일리노이 대학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로 커뮤니케이션, 철학, 컴퓨터 사이언스 등을 가로지르는 상호 학제적 연구와 출판물로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 사상가 자크 데리다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국제 지젝 연구”의 공동 창립자 겸 기획자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는 『사이버 공간을 해킹하기』, 『다르게 사유하기: 철학,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트랜스그레션 2.0: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문화, 정치』, 『기계라는 문제: AI, 로봇, 윤리에 대한 비판적 고찰』 등 9권이 출간되었다.
    역자 · 문순표
    독일 포츠담대학원 철학과에서 ‘병리’ 개념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를 함께 썼고, 『믿음 없는 믿음의 정치』를 옮겼다. 이안 제임스의 『새로운 프랑스 철학- 데리다, 들뢰즈, 푸코 이후』와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이상 근간)를 번역하고 있다.

heart 관심 글 등록

의견달기

  • 댓글달기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