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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분류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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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별감수성의 사각지대 작성일 2019-09-06
  • 김지혜 지음 ㅣ 창비, 2019-07-17
  • 4장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



    “인종으로 놀리는 게 웃겨?”


    (중략)


    당신이 웃는 이유


    ‘웃찾사’의 개그가 논란이 되면서, 흑인 분장을 소재로 삼은 코미디물의 역사도 함께 부각이 되었다. 블랙페이스blackface란 흑인 분장을 하고 노래와 춤을 추는 극장 공연 형식을 말한다. 배우들은 피부를 검게 칠하고, 입술을 과장되게 그리며,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해진 옷을 입는다. “짐 크로”Jim Crow는 19세기 미국에서 이런 흑인 분장을 하고 춤을 추는 공연으로 유명했던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정책을 채택한 법들을 통칭하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s이란 말은 이 블랙페이스 캐릭터에서 유래했다.


    미국에서 블랙페이스 이미지는 한동안 동화, 만화, 장난감, 각종 상품 등에 사용되며 흑인의 전형으로 고착되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민권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블랙페이스를 이용한 공연과 이미지를 모두 거부하는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블랙페이스가 흑인에 대한 비하이며 인종차별이라는 비난과 함께, 노골적인 블랙페이스 사용은 미국 사회에서 금기시되었다. ‘웃찾사’에 사용된 분장은 블랙페이스의 분장기법과 일치한다. 오래전 정형화된 흑인 이미지를 차용했고, 그 시대착오적인 이미지를 2017년 한국에서 웃음의 기법으로 활용했다.


    똑같은 분장이 언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웃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한가지 사실은 분명해진다. 유머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엇을 유머로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어떤 내용을 보고 즐거워하는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약함, 불행, 부족함, 서툶을 볼 때 즐거워한다고 했다. 웃음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조롱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을 우월성 이론superiority theory이라고 한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우월성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위치에 따라 같은 장면이 웃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내가 우월해지는 장면이라면 웃기지만, 반대로 내가 깎아내려진다면 웃기지 않다. 돌프 질만Dolf Zilmann과 조앤 캔터Joanne Cantor의 1972년 실험은 같은 장면을 보고 전문가와 대학생이 어떻게 달리 반응하는지 보여준다. 참가자들은 상급자-하급자 관계부모-자녀, 교사-학생, 고용주-피고용인 등에서 서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대화 장면을 만화로 보았다. 실험 결과,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전문가들은 상급자가 하급자를 깎아내리는 장면을 더 재미있어한 반면,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대학생들은 반대로 하급자가 상급자를 깎아내리는 장면을 더 재미있어했다.


    집단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을 우월하게 느끼게 하는 농담, 달리 말하면 자신이 동일시하지 않는 집단을 깎아내리는 농담을 즐긴다. 만일 상대 집단에 감정이입이 일어나면 그 농담은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상대를 나와 관계없는 사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겨야 농담을 즐길 수 있다. 상대 집단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가? 자신과 결코 동일시하지 않는, 거리를 두고자 하는 집단에 대한 비하는 내가 속한 집단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즐거운 일이 된다.


    물론 이 유머 뒤에 숨어 있는 어두운 마음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설령 인정하더라도 감추고 싶은 부분일 것이다. 모든 유머가 우월성 이론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웃음은 이 부끄러운 내면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다. 어떤 집단을 희화하는 유머는 이런 집단 심리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왜 웃긴가?”라는 질문은 “누가 웃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흑인 분장을 보고 웃는 사람은 어떤 집단과 동일시하는 사람들인가? 웃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가?


    토머스 포드Thomas Ford와 동료들은 비하성 유머가 마음속 편견을 봉인해제시킨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어떤 집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통의 상황에서는 사회규범 때문에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비하성 유머를 던질 때 차별을 가볍게 여겨도 된다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 결과 규범이 느슨해지고, 사람들은 편견을 쉽게 드러내면서 차별을 용인하거나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설명을 편견규범이론prejudiced norm theory이라 부른다.


    유머가 금기된 영역의 빗장을 순간적으로 풀어내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일탈적인 행위가 유머를 통해 놀이 또는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된다. 가벼운 대화일 뿐이므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금기된 영역을 넘나들기 때문에 권력에 도전하는 풍자가 가능하고, 사회는 그 가치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금기의 빗장이 약자를 향해 풀렸을 때 잔혹한 놀이가 시작된다. 


    최근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인 혐오표현hate speech은 약자들을 향한 언어유희의 현상으로 대표된다.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의 댓글을 통해 특정 집단을 향한 비하성 언어들이 만들어지고 유통되었다. “똥남아”동남아시아인, “똥꼬충”게이, “급식충”아동·청소, “틀딱충”노인, “맘충”엄마 등 사람을 ‘벌레’나 ‘똥’에 비유하여 비인격화하는 말들이 등장했다. 무엇이든 웃음거리가 된다면 괜찮다는 듯, 집단적 편견과 적대감이 봉인해제되었다.


    이런 ‘놀이’의 잔혹성은 특히 그 표현의 발신자와 수신자의 간극 사이에 존재한다. 수신자의 입장에서 “그건 비하에요!”라고 말할 때, 발신자가 “비하할 의도가 없었어요”라고 답하는 진부한 레퍼토리가 이 간극에서 나온다.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면 무슨 의도가 있었을까? 원래의 의도는 웃음을 유도하려는 경우가 많다. ‘웃찾사’의 흑인 분장사건도 웃기려는 것이었다. 흔한 말로 ‘개그 욕심’이거나 상대의 호감을 얻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 멘트들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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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저자 · 김지혜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한다. 이주민, 성소수자, 아동·청소년, 홈리스 등 다양한 소수자 관련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통해 사회에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 전산과학전공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 미국 워싱턴대학교 로스쿨 J.D.(Juris Doctor) 학위를 받았다. 서울특별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 헌법재판소 등 기관에서 일했으며, 다수의 연구논문과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공저) 『인권행정 길라잡이』(공저) 등을 쓰고, 『헌법의 약속』 『사회보장론 입문』 을 번역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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