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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분류 :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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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임슬립 의학 세계사 작성일 2019-01-11
  • 서민 지음 ㅣ 생각정원, 2018-12-21
  • 1부


    고대 기원전 5300년 ~207년


    신의 시대: 형벌과 마법사


    문신


    신석기시대의 마지막 치료법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뭣 때문에 왔어?”


    노파를 처음 봤을 때, 외치Ötzi는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노파는 외모에서부터 영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초면에 내뱉는 반말은 자신 있는 사람들의 특징 아니던가. 외치가 노파를 찾아온 이유는 숨 쉬기가 힘들어서였다. 원래 그는 걷고 뛰는 일만큼은 능했다. 돌도끼배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했을 만큼 탁월한 주력 덕분에 외치는 부족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으로 꼽혔다.


    ‘말하는 멧돼지 사건’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외치와 격투를 벌이던 멧돼지가 외치를 피해 한 시간쯤 달렸을까? 이젠 적을 따돌렸을 거라 생각한 멧돼지는 바닥에 엎드려 쉬고 있었다. 그때 외치가 창을 들고 나타났다. 확 짜증이 난 멧돼지는 “이런 징한 놈. 마음대로 해야”며 누워버렸단다. 외치가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외치의 말을 믿었다. 그만큼 외치는 끈질긴 사냥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치는 예전처럼 뛰지 못한다. 뛰는 것은 고사하고 걷는 것조차 어렵게 됐다. 일단 허리 왼쪽이 쑤셨고, 왼쪽 정강이와 오른쪽 무릎, 양쪽 발목 등 도대체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좀 빨리 걷기라도 하려면 숨이 차는 증상이었다.


    ‘그동안 너무 무리했어.’


    외치는 무척 험한 일을 해왔다. 동물을 사냥해 부족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일이 그의 임무였다.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부상을 당했다. 멧돼지를 사냥하다 받히기도 했고, 높은 곳에서 떨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외치는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그 고통을 이겨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시간이 지나도 증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외치는 놀라운 말을 들었다. 서쪽으로 반나절만 걸어가면 영험한 산이 나오는데, 그 산기슭에 있는 노파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날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자 생각을 고쳐먹는다. 사람이란 대안이 없으면 포기하고 살지만, 고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면 당장의 고통을 참기가 어려워지는 존재가 아니던가. 결국 두 번이나 허탕을 친 끝에 외치는 영험하다는 그 노파를 만날 수 있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요. 가까운 거리도 쉬었다 가야 해요. 참, 무릎이랑 발목도 쑤시고요.”


    외치는 말하면서 가슴을 가리켰다. 노파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은 숯으로 외치의 심장 부위에 표시를 했다.


    “나을 수 있습니까?”


    노파는 대답 대신 뒤쪽으로 돌아 상자를 열어 숯가루를 꺼냈다. 그러더니 밖에 나가 물 한 바가지를 떠온 뒤 숯가루에 뿌리고, 열심히 휘젓기 시작했다. 잠시 뒤 노파는 외치에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아야!” 갑자기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노파가 뾰족한 물체로 그를 찌르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노파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에 외치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희한하게도 아팠던 부위가 한결 시원하게 느껴졌다. 노파에게 영험한 기술이 있다는 말은 맞는 듯했다.


    “내려와.” 노파의 말에 외치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어떻게 아프게 찔리는 와중에 잘 수가 있지?’ 외치는 멋쩍게 웃으며 내려와서 옷을 걸쳤다. 


    “좀 어때?” 숨찬 증상은 한결 나아졌지만, 무릎은 여전히 쑤셨다. 그 말을 하자 노파는 외치의 무릎을 만져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로운 치료법이 있을까 싶었지만, 노파는 숯가루를 다시 가져왔다. 이전보다 더 큰 고통에 외치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냈다. 


    “가만히 있어. 낫고 싶으면.” 외치의 허리와 다리에는 13센티미터 가량의 연속된 세 줄이, 무릎에는 십자 모양의 문신이 새겨졌다. 좀 어떠냐고 노파가 다시금 물었다. 외치는 훨씬 나아졌다고 대답했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것 같았다. 



    아이스맨 외치


    1991년 알프스산을 오르던 독일인 부부가 얼음 속에서 엎드려 있던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냉동된 덕분에 시체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처음에 경찰은 이 사람이 혹시 실종됐다던 학교 선생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이상한 점이 많았다. 시체에 도끼며 화살 같은 것들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학자들은 그가 5300년 전에 죽은 신석기시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발견된 곳이 외치계곡이어서 이름을 ‘외치’라고 했다. 얼음에 갇혀 있었는지라 ‘아이스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5000년 전 인간이 원형 그대로 보존됐다니,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가 지닌 모든 것들이 연구 소재가 됐다. ‘외치에게도 심장이 있더라!’ ‘외치도 적혈구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고 있다!’ 등등. 인간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좋은 학술지에 실렸으니 5000년이라는 세월의 힘은 생각보다 지대하다.


    현재 외치는 이탈리아 볼차노라는 도시에 전시돼 있는데, 그 지역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바로 ‘외치’라고 한다.


    상상력을 동원해 외치가 노파에게 찾아가 치료받는 과정을 그리긴 했지만, 엑스레이와 CT 등으로 외치를 들여다본 결과 그는 살아생전 많은 통증으로 고통받았던 모양이다.


    첫째, 어금니 4개가 모두 빠져 있었다. 게다가 치아의 끝부분이 마모된 상태였다. 치약이나 칫솔이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둘째, 목뼈에 퇴행성관절염의 징후가 관찰됐다.

    셋째, 왼쪽 아홉 번째 갈비뼈가 부러졌다가 자연적으로 붙었다.

    넷째, 오른쪽 고관절에 퇴행성관절염의 소견이 있었다. 이로 인해 외치는 걸을 때마다 고관절이 쑤셨을 것이다.

    다섯째, 오른쪽 정강이에 해리스선Harris line이 관찰됐다. 이는 자랄 때 해당 부위에 큰 충격을 받아 잠시 성장이 멈췄다는 얘기인데, 이로 인해 아팠을 것 같지는 않다.

    여섯째,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뼈가 웃자란 소견이 나타났다. 왼쪽 엄지발가락에는 동상의 후유증 소견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외치의 심장은 그 수명을 다했던 것이다. 바로 확장성 심근병증이란 것으로, 이는 심장이 확 퍼져버려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하니 숨 쉬기가 곤란하고 몸 여기저기가 붓는다. 안 그래도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았는데, 물까지 차니 통증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문신을 새긴 외치


    안타깝게도 그 당시의 의학으로는 외치의 심장은 물론이고 무릎과 발목의 퇴행성관절염도 고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진통제도 없던 시절이라 외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픔을 참으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외치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용한 문신 기술자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자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외치에게 문신을 잔뜩 새겼다. 문신의 위치가 엑스레이에서 관찰된 손상부위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신이 치료를 위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문신이 반드시 치료를 위한 용도로만 쓰이지는 않았다.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2500년 전 25세 여성의 몸에 새겨진 문신은 사후세계에서 통하는 표식이었고, 500여 년 전 그린란드에서 발견된 이누이트족 미라의 얼굴에 새겨진 줄 모양의 문신은 결혼했다는 표지였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문신을 새기는 문화권도 꽤 존재한다. 다음을 보자.


    “시베리아의 여러 민족들은 보통 문신을 치료기술의 일부로 사용한다. 예컨대 한티인들이 문신을 하는 이유는 내장에 깃든 병이 문신에 새겨진 동물이나 새 등으로 옮겨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몸에 신비한 힘을 지닌 기호를 새겨 병을 고친다는 문신의 의미는 파지리크인들 사이에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파지리크 2호 고분에서 출토된 미라의 허리 부분에는 척추뼈를 따라 양쪽으로 1열씩 동그라미 모양으로 문신을 한 흔적이 있다. 아마도 아픈 허리 부위에 치료 목적으로 문신을 한 것 같다.”


    파지리크인은 25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시베리아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척추뼈에 새긴 동그라미 모양의 문신은 외치의 척추뼈 옆에 새겨진, 세 줄짜리 문신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런 문신이 통증 완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까? 이건 순전히 추측이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다. 의사가 날 낫게 해줄 것이라고 믿으면 실제로 통증이 완화되는 현상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마취제가 떨어졌을 때 식염수를 마취제라고 속여 수술을 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신기하게도 그 병사는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니, 플라세보 효과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두 번째는 좀 궁색하지만, 통증 완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면 문신 기술자의 명맥이 그렇게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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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저자 · 서민
    단국대에서 기생충학을 가르치며, 칼럼도 쓴다. 서른까지 책을 읽지 않고 살았는데, 내는 책마다 유치하다는 욕을 들어 뒤늦게 독서를 시작했다. 결국『서민의 기생충 열전』이라는 책으로 기생충계를 평정했는데, 그 과정에서 책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나누고자 독서에 관한 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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