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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리스트 실체와 저항의 문화적 의미 1 작성일 2017-03-28




  • 이동연 │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 블랙리스트라는 기호의 의미작용


    우리는 지금 박근혜 통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정신병리적 실체를 밝혀줄 블랙리스트라는 퍼즐을 맞추고 있는 중이다. 블랙리스트는 감시가 필요한 예술인들을 구별짓고 배제하기 위한 정치적 명부이다. 그것은 또한 정당성 없는 정치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허구적인 가설과 신념을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이다. 블랙리스트의 근거는 다음과 같은 신념에 기초한다. “문화예술인이 지나치게 좌편향 되어 있다. 그래서 예술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으면 문화가 균형 있게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문화정책을 바로 세우기 위해 좌파예술가 척결을 위한 블랙리스트는 적절한 조치다.” 블랙리스트가 필요하다는 신념은 언제나 이미 무의식 안에 내장되어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내적인 신념 체계를 갖춘다. 그 신념 체계 안에서 블랙리스트는 국가 문화발전과 모순되지 않는다. 적어도 박근혜와 공안적 관료들에게 그것은 오히려 적절한 개입이고 애국을 향한 양심적 행위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블랙리스트는 문화융성과 이항 대립한다. 그것은 문화융성의 타자이자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다. 박근혜 문화통치의 기이한 상상을 야기한 문화융성은 블랙리스트라는 무의식을 표상하는 분열적 기표이다. 문화융성은 블랙리스트의 기표이며, 블랙리스트는 문화융성의 기의이다. 그래서 문화융성은 텅 빈 기호, 부재하는 슬로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문화융성의 실체가 블랙리스트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융성의 무의식이라는 점에서 정신병리적인 성향을 갖는다. 이러한 정신병리학적인 성향은 박근혜 통치 안에 내재한 심리구조이고, 역사적 유산을 갖는다. 그것은 그의 부친으로부터 배운 유신 문화정치의 학습효과이며, 유신의 문화정치를 재생산하려는 의지의 연장에 있다. 박정희의 ‘민족문화 중흥’과 ‘유신의 문화공안 조치’의 관계는 박근혜의 ‘문화융성’과 ‘블랙리스트’의 관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아니 전자는 후자로 계승되고 재생산된다. 문화융성도 유신의 애국적 향수를 재생산하며, 블랙리스트도 유신의 공안적 문화통제를 재생산한다. 유신의 문화정치가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모순적이게도 문화융성과 블랙리스트가 공존해야 한다. 한편에서는 문화를 정신의 융성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를 정신의 통제로 이중 관리하는 것, 이것이 유신의 문화정치이다. 박근혜 문화융성 정책의 주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가 ‘정신문화’라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2) 정신문화는 유신의 인문학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유신의 문화정치는 권력의 정당성과 재생산을 확보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라는 사회적 관리 장치를 탄생시켰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인들을 구별하는 일종의 살생부로 한정할 수 없다. 이미 그것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암묵적인 사회 관리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유신의 문화정치는 정치적 히스테리와 문화적 포비아를 혼합하면서 탄생했다. 유신의 시대, 민족문화 중흥은 대중들로부터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얻고자 문화민족주의에 호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리고 문화공안 조치는 정치권력의 붕괴에 대한 자기 공포의 감각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적 히스테리는 정치적 정당성의 부재 원인이며, 문화적 포비아는 정치적 붕괴의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마찬가지로 문화융성은 정치적 히스테리로, 블랙리스트는 문화적 포비아로 등치시킬 수 있다. 단지 박근혜의 문화정치가 유신의 문화정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블랙리스트의 공작이 부친처럼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강제하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문화융성이란 기표는 블랙리스트를 은폐시키는 위장술이다. 은폐는 우발적인 것은 아니다. 은폐는 공포의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이다. 은폐는 공포가 현실화될 때, 주체를 방어할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럴 때, 은폐는 비로소 본성으로 작동한다. 블랙리스트는 부재한 것이 아니라 은폐된 채로 현실화의 순간을 기다렸을 뿐이다. 블랙리스트는 정치적 위기의 순간을 관리하는 공안 카드로 문화적 포비아를 제거하고 싶은 불안한 충동에서 감행된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하나의 기호체계이며, 현실의 텍스트 안에서 스스로 의미작용을 한다. 그것이 기호체계인 것은 블랙리스트를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라는 사전적 정의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박근혜 통치의 본질을 보여주는 언표이다. 그것은 이미 사회적, 정치적 의미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블랙리스트라는 기표는 그 문건 작성을 주도한 사람들이 스스로 명명하지는 않았다. 블랙리스트가 하나의 기호가 된 것은 그것이 세상 밖으로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그 안에 많은 질문들을 가능케 했다. 그것은 누가 만들었고, 왜 만들어진 것인가? 그것은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 진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블랙리스트를 사회적 텍스트를 구성하는 기호로 상상하게 만든다. 블랙리스트가 사회적 텍스트로 작용하면서 그것은 우리 시대의 문화현실을 규정하는, 박근혜의 문화융성의 야만적 실체를 이해하는, 통치자의 정신병리적 상태를 분석하는 기호로 작용하고 있다. 기호의 의미작용으로서 블랙리스트는 그 안에 감추어진 통치자의 정신세계를, 그 작성에 동원된 관료들의 위계적 위치와 권력에의 의지를, 그것이 작동되는 사회적 원리를 사회적 의미로 생산한다. 블랙리스트라는 기호의 의미작용을 분석하기 위해 먼저 블랙리스트의 시간의 계열화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 블랙리스트 시간의 계열화 


    은폐된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은 정치권력이 위기를 의식하는 순간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블랙리스트는 정치적 위기의식이 문화에 즉각적으로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의 시간은 문화적 공포심을 현실화하는 시간이다. 예술가들에게 블랙리스트는 위협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역설적으로 영예로운 징표일 수 있다. 두려움과 공포심을 갖는 것은 오히려 블랙리스트를 만든 당사자들이다. 블랙리스트는 공포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에 공포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거꾸로 블랙리스트는 예술가들에 대한 공포심을 현실화한다. 어떤 점에서 블랙리스트는 조악한 권력 행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에는 권력의 공포심리를 표면화한다. 


    권력의 공포심리로서 블랙리스트가 통치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다가 의식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을 우리는 블랙리스트의 시간이라 말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의 시간 안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사건의 시간이 개입되어 있다. 첫 번째는 세월호 재난의 시간이고, 두 번째는 예술 검열의 시간이고, 세 번째는 비선실세의 시간이다. 세월호 재난의 시간은 블랙리스트의 시간을 앞당겼다. 예술 검열의 시간은 블랙리스트의 시간을 통해서 심화되었다. 비선실세의 시간은 블랙리스트 시간을 이용했다. 이 세 가지 시간은 박근혜 통치의 본질 안에 모두 응축되어 있다 폭발한 것이다. 세월호 재난의 우발성은 재난의 구조적 필연성 안에 존재한다. 예술 검열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이미 자행되었지만, 블랙리스트 시간의 국면에서 조직적으로 확장되었다.3) 블랙리스트의 시간은 예술 검열의 시계를 빨리 돌리고, 예술 검열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비선실세의 시간은 블랙리스트라는 공안정치에 기름을 붓고 문화행정을 공황상태에 빠트려 사익 추구를 노골화하는 시간이다. 비선실세의 시간은 블랙리스트 공작을 통해 공공적 방어막을 무장해제 시켰다는 점에서 문화행정에 개입한 게 아니라 그것을 장악한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시간은 비선실세의 권력을 확장하고, 공공의 자원을 사유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세월호 재난은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그것은 정치적 위기가 축적된 결과이자, 통치 위기의 시작이다. 블랙리스트의 시간은 정치적 위기가 시작되는 시간과 일치한다. 블랙리스트가 작동하는 순간이 세월호 재난의 순간과 대체로 맞아떨어진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초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유진룡 전장관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블랙리스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 대체로 세월호 사건 직후라고 말했다. 세월호 재난은 박근혜 정부에게 너무 빠른 정치적 위기를 몰고 왔다. 세월호 재난은 이성에 기반 한 국가 통치성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박근혜 통치자의 숨겨진 사적 관계들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박근혜는 세월호 재난의 골든타임인 7시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가적 재난의 가장 중요한 7시간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기억을 거부하거나, 기억할만한 행동이나 조치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망각이 은폐의 알리바이든, 무능의 증거이든 모두 통치자와 통치의 재난적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세월호 재난은 통치성의 재난을 확인시켜주었고 통치자의 무능과 사적 의혹들을 증폭시키면서 정치적 위기를 고조시켰다. 세월호 재난의 가장 중요한 7시간 동안 베일에 가려진 통치자의 사적인 시간은 은폐되어야 했고, 은폐와 위기의 탈출을 위한 위장술이 필요했다. 블랙리스트는 정치적 위기와 통치자의 사적 시간을 은폐하기 위한 위장술로 동원된다. 


    세월호 재난과 함께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위기의식을 갖게 된 계기 중의 하나가 영화 <변호인>의 예상치 않은 흥행이다. 2013년 12월 18일에 개봉한 영화 <변호인>은 2014년 9월까지 총 1,1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영화 역대 흥행에서도 9위에 오를 정도로 대중적인 호응이 폭발적이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영화 <변호인>으로 인해 고 노무현 대통령의 향수가 살아나 정권에 대항하는 제2의 촛불시위로 번질 것에 대해 우려했다고 한다.4) 이미 언론에 보도된 대로, 청와대 조원동 전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뜻이라며 2013년 연말에 영화 <변호인> 제작에 공동 투자한 CJ의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이미경 부회장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2014년 10월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났다.5) 청와대는 CJ E&M의 계열 케이블 방송사인 TVN에서 방영하는 의 풍자 패러디 코너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었다. <변호인>, <광해>, 같은 오락물들이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흥행하고 대중적으로 유포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적대관계가 권력의 반작용의 형태로 재현되고, 박근혜의 캐릭터와 통치성이 풍자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다간, 세월호 재난의 국면과 연계되어 박근혜 정부에 정치적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 블랙리스트 작성의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듯하다. 여기에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에 대한 전시 중단 지시 논란이 있었는데, 2014년 8월 8일자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은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로 “홍성담 배제 노력, 제재조치 강구”라고 적고 있다. 비망록에는 2014년 10월 2일에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며 “문화예술계 좌파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 2015년 1월 2일에 “영화계 좌파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이라고 적혀있다.6) 


    영화 <변호인>은 블랙리스트가 가시화되는 데 있어 결정적인 텍스트가 된 셈이다. <변호인>은 블랙리스트의 시계를 급하게 작동시켰다. 블랙리스트의 시간은 세월호 재난의 시간과 영화 <변호인>의 흥행의 사회적 효과가 오버랩 되는 2014년 여름, 그러니까 박근혜 통치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통치의 파국의 시작되는 시점과 대략 일치한다. 그리고 예술 검열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문체부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블랙리스트의 전달 시점이 2014년 6월과 7월이고, 이후에도 문체부의 미온적인 대응을 질타하며 1급 고위 관료들을 교체하면서까지 노골적으로 관철시키려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블랙리스트의 작성은 매우 긴박하고 절실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의 시간은 재난의 공포와 예술의 공포를 동시에 함축한다.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재난과 그 자체로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그러나 세월호 재난 이후 예술가들의 예술행동이 즉각적이고 급진적이었다는 점7), 세월호 재난 이후 통치의 재난의 실체가 드러나고, 깊은 애도와 성찰보다는 사회적 통제와 관리를 강화하는 공안통치의 숨겨진 얼굴이 드러났다는 점은 블랙리스트가 세월호 재난과 깊게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김기춘 식의 공안 통치는 세월호 재난을 표현하는 예술가의 불온한 상상력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컨대 세월호의 실재하는 재난과 그것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다이빙 벨’과 같은 문화적 표현물의 불온한 접속은 블랙리스트라는 공안 통치의 음흉한 공작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재난과 통치에 저항하는 문화적 표현물은 블랙리스트의 시간을 작동시켰고, 블랙리스트의 시간은 예술 검열의 시간을 심화시켰다. 예술 검열의 시간은 문화예술의 지원체계를 무력화시키고, 합리적 문화행정을 붕괴시켰다. 


    비선실세의 시간이 개입하는 순간이 바로 이 시점이다. 비선실세가 만들고자 했던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은 막대한 이권과 민원을 위해 정치적 빅딜을 준비하던 재벌들에게는 상부상조할 수 있는 ‘뇌물-이권 세탁’의 적절한 플랫폼이다. 재벌들이 출연한 800억은 자신들이 얻게 될 이권에 비해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재단의 출연금이 최순실- 차은택 비선실세의 호주머니에 들어간다 한들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출연금을 각출하고 자신들의 숙원 민원들을 관철시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최순실-차은택 비선실세가 재단을 사익 추구의 플랫폼으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박근혜의 적극적인 역할과 묵인, 막대한 돈을 출연한 재벌의 이해관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문체부 내부 행정 시스템을 붕괴시켰던 이 두 재단 설립의 주 목적이 비선실세의 이권을 챙겨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진보적인 문화예술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애초에 논란이 있어났을 당시에 두 재단은 최순실의 사익을 위한 자금세탁소로 인지되었다. 블랙리스트는 이러한 비선실세의 사익 추구에 걸림돌이 되는 인사들을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식의 기사8)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특검의 관련자 소환 조사를 통해 두 재단의 장기적인 쓰임새의 주 목적이 좌파척결이 목적이었다는 점이 새로 확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 구상을 한 사람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계가 진보 좌파 세력의 영향력이 커 문화예술계의 새 판을 짜기 위해서 재단 법인의 설립에 나섰다고 한다.9) 이 같은 사실은 재단의 출연금 모금에 주도적으로 나선 안종범 정책기획수석의 업무 수첩에 기록되어있고, 안종범 수석 역시 전경련 인사들과 재단 출연금 관련 회의에서 이 같은 취지로 말했다는 진술이 확보되었다. 


    그런 점에서 비선실세의 시간은 블랙리스트의 시간과 두 가지 경로에서 만난다. 하나는 비선실세의 사익 추구에 걸림돌이 되는 인사들을 제거하는 경로와 다른 하나는 문화예술계의 좌파 척결의 경로이다. 비선실세의 시간은 블랙리스트의 시간과 이데올로기적 동맹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 경로를 공유하지만, 주되게는 블랙리스트 국면을 활용하여 문화행정의 공공 경로를 무장해제 시키고, 블랙리스트라는 공안 통치의 이름으로 사적인 프로젝트를 가동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선실세의 시간은 박근혜와 김기춘과 같은 역사적 공안 정치와 공모하여 사익 추구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했다. 사악 추구를 위해 비선실세의 시간은 블랙리스트의 시계의 속도를 가속시키는 역할을 했다. 블랙리스트의 시간과 연계된 세 가지 시간의 계열은 결국 블랙리스트가 박근혜 정부와 그 공안적 통치의 본질을 구체화한다. 세월호 재난의 시간은 통치의 재난 상황을, 예술 검열의 시간은 문화융성의 허구성과 유신문화로의 회귀를, 비선실세의 시간은 문화권력의 사유화를 드러낸다. 블랙리스트의 시간은 박근혜 통치의 붕괴의 신호이자. 유신 회귀와 그 역사적 종말의 시간이다. 



    3. 블랙리스트의 전달 체계


    블랙리스트는 문화공안 정국의 인장이자, 유신의 징표이다. 블랙리스트는 그 자체로 검열의 증거일 뿐 아니라, 문화현장에서 검열의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했다. 그것은 통치자를 정점으로 윗선의 지시로 전달되었고, 문서화되었으며, 실제로 실행되었고 확인과정까지 거쳤다. 그런 점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22조를 위반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통치자의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 블랙리스트는 최순실. 차은택, 김종 등 비선실세들이 문화정책과 행정을 파탄내고 돈과 권력을 사유화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비선실세는 블랙리스트 작성에 공모했거나 묵인했다. 블랙리스트로 인해 배제와 포함의 논리가 공고해지면서 비선실세에 의한 돈과 권력의 사유화가 본격적으로 가능해졌다. 블랙리스트는 진보적 예술가를 배제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할 여지를 만들어주었고, 관료들을 겁박하거나 관직을 미끼로 그들에게 자발적 동참을 요구함으로써 관료 체계 내 감시와 견제 장치를 소멸시켰다. 


    놀라운 점은 언론을 통해 밝혀졌듯이 블랙리스트가 사적 권력을 위한 관료의 충성 경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통치자 자신의 결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박근혜는 좌파 척결을 목표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설립에 앞장섰다. 앞서 설명했듯이 박근혜는 문화계에 진보 좌파 세력의 영향이 너무 커 문화계의 새 판을 짜기 위해 미르재단의 설립에 나섰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 설립하는 데 최순실이 주도적으로 나섰지만, 애초에 이런 구상을 하고, 모금을 주도한 것은 박근혜 자신이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설립이 블랙리스트와 예술 검열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의 최종심급은 사익을 추구하려는 최순실이 아닌 진보적 문화계를 척결하려는 박근혜 자신이다. 말하자면 박근혜는 블랙리스트라는 카드로 문화적 공안정치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고, 수많은 예술가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수많은 곡들을 금지시킨 부친의 유신 문화정치를 부활시킨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폭로로 대통령 취임사에서 주목받았던 문화융성이란 국정과제는 허구적 기표에 불과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민족문화중흥과 문화검열을 공존시킨 부친의 유신의 문화정치의 이중성과 일치한다. 문화융성은 문화적 공안정치를 숨기는 가면효과이자, 위장술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블랙리스트의 책임은 오로지 박근혜에게만 있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블랙리스트 작성, 전달, 수행에 가담하고 공모한 주체들 모두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블랙리스트는 집단적 공모의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며, 그것의 현실화는 구체적인 전달체계를 전제로 한다.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동아일보』 2016년 12월 28일자보도는 블랙리스트의 전달경로를 최순실→박근혜→김기춘→조윤선/정관주→(국정원 수집정보 동원)→모철민→김소영→문체부 담당국(예술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산하기관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블랙리스트 작성이 필요하다는 최초의 제안자가 최순실이고 대통령의 동의하에 블랙리스트가 일사분란하게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특검조사와 언론보도에 의하면 블랙리스트의 실체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점차로 분명해지고 있다. 그래서 최순실이 먼저인지, 박근혜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이미 오래 동안 혼과 마음을 교신하던 운명공동체로서, 유신의 시간에서 탄핵의 시간까지 주술정치의 자웅동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의 시작과 근원은 이 두 사람의 호명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럴 경우 블랙리스트의 호명은 단지 둘만의 사교적邪敎的 주문으로만 인지되지 않을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공안적 공작정치이고, 유신의 악귀를 불러낸다는 점에서 공안과 유신의 아바타 김기춘과의 동맹이 필수적이다. 김기춘과의 동맹은 블랙리스트의 역사적 유산을 완성시킨다. 블랙리스트의 역사적 유산을 완성하는 데 있어 ‘박근혜-최순실’의 관계가 필요조건이라면, 박근혜-김기춘의 관계는 충분조건이다. 블랙리스트 공작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자는 김기춘이다.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는 크게 보아 세 가지 위계적 동맹체로 구성된다. 그 첫 번째가 앞서 설명한대로 사이비 주술의 정신세계가 지배하는 ‘사교-유신 동맹체’이다. ‘사교-유신 동맹체’는 자기 신념의 공동체이기도 한데, 그것이 주술적이든 공안적이든 확고한 자기 신념 하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에 공모한다. ‘사교-유신 동맹체’에게 있어, 블랙리스트는 구국을 위해 척결해야 하는 부정 탄 주문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공안과 반공을 위해 죽여야 할 자들의 살생부이자, 유신의 아버지 박정희의 혼령을 불러내는 축문이다. 그래서 ‘사교-유신 동맹체’는 블랙리스트를 구국 안보를 위한 공작의 대상이자, 주술의 대상으로 보려한다. ‘사교-유신 동맹체’에 속하는 사람들이 바로 박근혜-최순실-김기춘-국정원이다. 블랙리스트 작성에 국정원이 개입된 것은 필연적이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공안정치의 핵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동맹체가 특이한 점은 주술의 정체성과 공안의 정체성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최순실의 주술 정치와 국정원의 공안정치가 조우할 근거는 희박하다. 다만 그것이 하나의 동맹체를 이룬 것은 박근혜가 있기에 가능하다. 주술정치와 공안정치 이 양쪽을 연결하는 주체가 박근혜이며, 비로소 블랙리스트 통치의 정신세계에 ‘주술적 공안’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신체화 된다. 


    두 번째 동맹체는 두 번째는 ‘정치-관료 동맹체’이다. 이 동맹체는 결코 첫 번째 동맹체인 ‘사교-유신 동맹체’에 속할 수 없다. ‘정치-관료 동맹체’는 사교-유신 동맹체로 위장을 할 수는 있어도 그 정치적, 역사적 아비투스를 체득할 수 없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의를 할 수는 있어도 그 정신을 신체화 할 수 없다. ‘사교-유신 동맹체’는 역사적으로 맺어진 것으로 동시대의 정치적 권력의 이해관계 그 너머에 있는 근원적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관료동맹체’는 ‘사교-유신 동맹체’에 종속되어 일방적 지시를 받는 2차적 위치에 머무른다. 그들은 그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지를 표명하며 블랙리스트를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데 있어 필요한 정무적 실무 기획을 주도 할 뿐이다. 그들은 블랙리스트라는 공안적 프로젝트를 제안할 위치도 자격도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미션에 공모하고 아래 단계로 잘 전달해서 블랙리스트를 실현하여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예컨대 조윤선, 모철민, 정관주 등이 그런 자들이다. ‘정치-관료 동맹체’는 절대 최순실과 김기춘이 될 수 없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교-유신 동맹체’는 블랙리스트를 안보와 국위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대신 ‘정치-관료 동맹체’는 블랙리스트를 권력의 획득을 위한 충성심의 징표로 본다. 전자는 유신이란 영혼을 지키려하지만, 후자는 유신에게 영혼을 팔려고 한다. 


    세 번째는 ‘지식-권력 동맹체’이다. 이들은 블랙리스트의 미션을 전달받고 현장에서 수행하는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 이들은 단지 전달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실행을 해야 한다. 그들은 블랙리스트의 실행을 체크하고 관리하고, 때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동맹체들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은폐해야 한다. 이들은 지식-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에서는 블랙리스트의 미션을 수행하고, 그 내역과 실적을 상위의 동맹체에 보고해야 한다. 정치-관료 동맹체가 사교-유신 동맹체에 속할 수 없는 것과 다르게, 지식-권력 동맹체는 정치-관료의 동맹체에 속할 수 있다. 자신이 블랙리스트의 미션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두 번째 동맹체의 계열로 진입할 수 있다. 예컨대 김소영, 김종, 김종덕, 박명진, 김세훈 같은 인물들이 ‘지식-권력 동맹체’들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과 학계에 속한 사람들이다. 대학교수나 학자로 활동하다 박근혜 캠프에서 정책자문을 담당하고 명예와 권력을 얻기 위해 줄을 댄 사람들이다. ‘지식-권력 동맹체’들은 통치자와 정치적 동반자로서 오래 동안 보좌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이념적, 사상적 검증을 받는 시험대에 오른다. 블랙리스트의 순간은 역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 세 번째 동맹체에 속한 자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허구적 정당성을 갖고자 자신은 모르고, 알더라도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주문을 건다. ’지식-권력 동맹체‘에 속한 자들을 가장 비겁한 부역자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식인, 학자들이 공안적 문화 공작정치에 가담하고 공모하고 실행하며, 스스로 부인하려는 심리들은 바로 자신은 지식인이라는 허구적 신념을 내면화하려는 데서 비롯한다. 


    물론 이러한 세 번째 동맹체 말고,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에서 실제 검열을 수행한 중간관료들, 혹은 하위 관료들이 있다. 이들 역시 출세와 진급이라는 권력에의 강한 욕망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영혼을 기꺼이 팔 준비가 되어 있다.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밝혀졌을 때, 많은 중간관료들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저지른 검열을 정당화하기 위해 문화적 전문성을 운운하며 자신의 속셈을 은폐하려는 경우도 있다.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는 결국 문화의 영역에서 공안정치의 공작이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 역사적 경험들을 바탕으로 위로부터는 권력의 행사를, 아래로부터는 권력에의 욕망을 서로 암묵적으로 교환하며 각자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토대 하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블랙리스트는 표면적으로는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위계적, 종속적 경로의 성격을 가지지만, 심층적으로는 아래에서 위로 되먹임 되는 효과를 내재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가 가동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권력에의 욕망에 있기 때문이다. 



    4. 역사적 히스테리로서 블랙리스트 


    블랙리스트는 소환된 것이다. 그것은 동시대 권력에 의해 소환된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소환된 것이기도 한다. 그 역사적 유산이 바로 유신이다. 유신은 1972년 10월 17일에 선포되었고, 같은 해 11월 21일에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으로 제정되었다. 유신헌법은 1969년 10월 17일, 3선 개헌이 국민투표로 통과된 지 3년 만에 다시 만들어졌다. 말 그대로 3선 개헌은 4선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위한 개헌이 필요했고 그 개헌을 정당화할 수 있는 적절한 근거가 필요했다. 당시 박정희가 10월 17일에 발표한 담화문 중 일부를 보자. 


    우리 헌법과 각종 법령 그리고 현 체제는 동서 양극 체제하에서 냉전 시기에 만들어졌고 하물며 남북의 대화 같은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시기에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국면에 처해서는 마땅히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로의 일대 유신적 개혁이 있어야 하겠다. 남북대화의 적극적인 전개와 주변 정세의 급변하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실정에 가장 알맞은 체제 개혁을 단행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 2개월간 헌법의 효력의 일부를 정지시킨다.10)


    박정희 영구집권의 근거는 변화하는 남북관계와 주변 정세인데, 이것은 권력 재생산을 위한 냉전적 적대관계의 재생산에 불과했다. “남한은 항시적으로 북으로부터의 위협을 받고 있다”, “북한 추종세력들이 국가 불안을 야기 한다”, “남한이 적화통일 될 수 있다” 등등의 냉전적 가설들은 탈냉전 시대에도 여전히 체제를 새롭게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 근거로 활용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흉내 낸 박정희 유신의 정당성의 근거가 탈냉전적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인데, 그 근거로 만든 박정희의 정치 체제가 오히려 “안보와 공안을 강화하는 냉전체제로의 회귀”에 기반 한다는 것이 모순적이다. 이러한 모순적인 체제는 신경증적인 히스테리를 낳는다. 냉전적인 정치권력의 재생산을 위해 ‘탈냉전적 정치적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려는 심리 기제로 인해 자신의 모순된 논리를 은폐 혹은 회피하려는 신경증적인 반응이 강화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사전적인 의미에서 히스테리는 지각의식의 장애나 기관이 기능장애의 신체적 증세를 일으키는 현상으로 전환하여 심리적 상태의 갈등을 회피하거나 해소하려는 특성을 보인다. 히스테리는 개인의 신경증의 한 병리적 현상으로 주로 자기중심적으로, 항상 남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을 바라고, 오기가 있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성격, 또는 현시적인 병적 성격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증상을 역사-정치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자의식의 과잉과 자기 정당성의 부재” 사이의 모순에서 오는 신경증으로 정의할 수 있다. 말하자면 유신은 “자의식의 과잉과 자기 정당성의 부재”에서 오는 히스테리 증상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초기 저서 중의 하나인 『히스테리 연구』는 히스테리 증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메커니즘은 한편으로는 도덕적 비겁성에서 비롯된 활동이라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가 휘두르는 방어조치라고 할 수 있다”11) 프로이트의 이러한 정의는 블랙리스트라는 히스테리적인 증상이 “도덕적인 비겁성”과 “자아의 방어조치”로 설명될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해준다. 블랙리스트는 배제할 대상자를 선별하는 권력 주체의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심리적 자의식과 그것을 만듬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근거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 심리적 자의식의 기저에는 통치자를 위협하는 행위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심리와 통치자의 위기-공포감의 징후들이 발견된다. 박근혜-김기춘으로 이어지는 블랙리스트의 작성주체들로부터 그것을 하달 받아 실행하는 주체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지난 특검에서 증언했던 것들의 심리적 기제들은 모두 “도덕적인 비겁성”과 “자아의 방어조치”로 요약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라는 히스테리는 역사적 유산을 갖는다. 그것은 유신체제의 검열이 행한 히스테리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을 권력에 복종시키고, 예술가가 저항하면 감옥에 보내고 작품을 압수 폐기하는 일들은 이미 유신체제의 유산을 갖는다. 여전히 사교-유신 동맹체들은 권력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예술가들의 행위를 불쾌하게 여기고, 처벌하길 원하며 유신의 히스테리적 유산들을 소환시키길 원한다. 히스테리가 기억에 기초한 심리적 방어기제라는 점에서 역사적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히스테리와 역사적 기억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적절한 텍스트이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리어왕』에서 리어왕은 딸에게 모든 왕국을 분할해주고, 편하게 여생을 살고 싶었지만, 토지를 상실한 이후 그는 단지 딸에게 위임한 권력자일 뿐, 자신의 힘을 가질 수 없었다. 그의 권력은 점차적으로 약화되고, 리어왕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그의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마침내 그의 심복인 켄트가 사위 그로스터의 집에서 갇혀 감금당한 채로 있는 것을 보자 화가 치밀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O! how this mother swells up toward my heart; Hysterica passio! down, thou climbing sorrow” 

    (아, 가슴 속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구나! 염병아! 내려가거라! 치미는 슬픔아! 네가 있는 곳은 아래다“)


    사실 여기서 리어왕이 말한 “Hysterica passio!”는 3판까지는 “Historica passio!”였다. 히스테리라는 개인의 심리 상태가 ‘역사적 염병’으로 오기되는 순간이다. 이는 단순 실수로 볼 수도 있지만, 히스테리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리어왕의 모든 히스테리가 봉건제의 역사적 이행기에서 야기된 것이기 때문이다. 『리어왕』이 쓰인 시기는 봉건제가 위기를 맞고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기로 이행하는 시점이었다. 토지를 잃은 리어왕은 봉건 지배체제하에서는 아무런 권력을 가질 수 없다는 상황이 그로 하여금 히스테리를 유발시키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는데, 그러한 히스테리의 심리 구조 안에는 역사적 전환이라는 맥락이 존재한다. 리어왕의 대사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개인의 정신병리적 현상으로서 신체화된 히스테리증상이 어떻게 역사적 신경증으로 전이되는가이다. 


    블랙리스트는 역사적 히스테리의 문화적 산물이다. 문화는 역사적 히스테리의 증상이 가장 강한 곳이다. 블랙리스트는 문화의 히스테리 증상을 역사적으로 계승한 증거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히스테리의 심리를 역사화 한다. 예컨대 유신시대에 자행된 수많은 문화예술의 검열과 예술인들에 대한 탄압은 유신의 가장 극렬했던 히스테리의 순간이다. “인혁당 사람들을 사형시킨 1975년에 박정희 정권은 무려 225곡의 가요를 금지곡으로 묶었고, 대마초 단속을 통해 이장희, 윤형주, 신중현, 김추자 등 인기 가수들을 포함해 27명을 구속했다.”12)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된 1975년 6월에 정부는 “공연활동의 정화대책”을 발표하는데, 요지는 가요계를 정화시키는 일이었다. 이 대책으로 인해 1차에 130곡, 2차에 44곡, 3차에 48곡이 금지되었다.13) 1976년에는 레코드 제작시에는 의무적으로 건전 가요를 1곡씩 포함시키는 “건전가요의무삽입제”가 실시되었다. 영화산업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대대적인 통제와 검열, 정신의 백화 통치가 이루어졌다. 1973년 영화법 제4차 개정안은 영화진흥공사 신설과 검열강화가 주 골자였다. 1975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영화 시나리오 사전 심의가 강화되어, 시나리오 반려 비율이 1970년 3.7 퍼센트였던 것이 1975년에는 무려 80퍼센트까지 급증했다.14) 


    역사적 유산으로서 유신의 검열은 문화의 히스테리라고 할 수 있는데, 블랙리스트는 그러한 히스테리가 역사적으로 전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전이는 “조국근대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15)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전이된다. “박정희가 복제하고 싶은 대통령 1위에 꼽히고, 그의 동상이 여기저기 세워지기 시작하고 그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인 지금, 유신시대는 살아 있는 과거”16)가 된 것이다. “끝나버린 유신체제가 자주 되살아나는 것은 박정희를 불러내는 세력”(22)이다. 근대화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다시 소환되어 박근혜로 현시되고, 유신 체제의 문화와 예술의 검열은 지금 블랙리스트라는 역사적 히스테리로 부활했다.(계속)




    1) 이 발제문은 필자가 최근 예술인 블랙리스트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쓴 세 개의 원고(「블랙리스트와 유신의 종말」(계간 <문화/과학> 89호, 2017년 봄호), 「촛불의 리듬, 광장의 문화역동」, 『마르크스주의 연구』(2017년 봄호, 14권 제1호), 「시민혁명과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문화정체성」(전국 교수연구자비상시국회의 주최 <2017년 새민주공화국 제안을 위한 심포지엄> 자료집)를 바탕으로 본 발제 주제에 맞게 재구성한 것임을 밝힌다.

    2) 박근혜 정부 문화융성 정책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인문정신문화 진흥정책이다. 인문정신문화 정책은 14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5월 28일에 「희망의 새 시대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이 선 순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을 발표하면서 ‘인문정신 문화의 진흥’을 중요한 실천과제로 제시했고, 이 실천과제 중에 “문화정체성 정립을 위한 정신문화 진흥 기반 구축”이 포함되어 있다.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의 소위원회로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주무부서인 문체부는 2014년도 업무계획에 ‘인문정신의 재발견’을 주요 과제로 선정하면서 ‘인문정신문화과’를 신설하였다.(오창은, 「‘인문 복지`를 넘어 `인문 주체` 되기」, 『문화/과학』, 2014년 가을호, 79호, 참고)

    3) 블랙리스트의 시간이 공식화되는 2014년 여름 이후 예술 검열의 사례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이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전시유보 결정한 것에 반발해 홍성담 작가와 전시 참여 작가인 이윤엽, 홍성민, 정영창 작가가 작품 철거(2014.8.11.), 광화문 인근 동화면세점 옥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을 뿌린 이하 작가를 연행(2014.10.20.),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의 대형 멀티플렉스 <다이빙벨> 상영 거부(2014.11.1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35회 서울연극제의 아르코예술극장, 대학로예술극장 사용 대관 심의 탈락(2014.11.19.), 부산광역시, <다이빙벨> 상영 논란 등을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에 대해 사퇴 종용(2015.1.23.),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년 문학 분야 장관 상장 심사결과’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전태일 청소년문학상’과 ‘근로자문화예술제’에 대한 장관상 수여 거부(2015.1.27.), 국가인권위원회, 소설 <소수의견>, <디마이너스>의 작가 손아람 씨가 청탁을 받고 기고한 글을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내는 잡지 <인권>에 실지 않음(2015.2.9.), 박근혜 정권을 패러디한 <경국지색> 전단지를 제작·살포한 윤철면씨 자택을 압수수색(2015.2015.2.23). ‘박근혜도 국가보안법으로 수사하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제작·살포한 박성수씨와 변홍철 씨의 자택과 출판사, 전단지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 인쇄소에 대해 압수수색(2015. 3.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36회 서울연극제 개막 직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을 안전문제로 일시폐쇄 결정 통보(2015.4.3.), 영화진흥위원회, <다이빙벨> 상영 논란 등을 이유로 지원예산을 40% 삭감(2015.5.5.),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요강’을 통해 예술영화전용관을 직접 지원하던 방식에서 영진위가 선정한 영화에 대해 상영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지원방식 개편(2015.7.23.), 서울시립미술관, ‘2015예술가길드아트페어’에서 홍성담 작가의 <김기종의 칼질>을 작가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내림(2015.9.8.). 국회 문화예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도종환 의원은 박근형 연출가가 2013년에 발표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연극 지원 ‘창작산실’ 사업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었다는 내용의 녹취록 공개. 희곡분야에서 심사위원 평가점수가 1위였던 이윤택 작가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탈락(2015.9.11.). 한국공연예술센터,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팝업씨어터 작품 중 하나인 <이 아이> 공연을 방해(2015.10.18.),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프로그램의 협업 작품 <소월산천> 공연에서 박근형 연출가가 맡은 연극 부문을 제외할 것을 요구(2015.10.24.)

    4) 『한겨레신문』 2016년 11월 17일자, “청와대 CJ 압박, 영화 <변호인>이 결정적 이유” 기사 참고

    5) 『한겨레신문』 2016년 11월 3일자 ‘청와대, 이미경 CJ 부회장 사퇴 종용 의혹’ 기사 참고

    6) 『경향신문』 2016년 11월 10일자, ‘김기춘 “홍성담 배제 노력…예술계 좌파 책동에 대응” 지시‘ 기사, 『연합뉴스』 2016년 12월 12일자 기사 ‘문화예술인들 ‘블랙리스트’ 의혹 김기춘 특검 고발’ 참고

    7) 세월호 재난을 애도하고, 그 사태에 개입하는 예술행동은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사회적 애도, 애도의 정치로서 예술행동은 그 형식과 주체, 장소와 시간의 경계를 넘어 예술가에서 어린이, 팽목항에서 뉴욕, 급진적인 좌파에서 보수적인 시민, 대규모 집회에서 동네 모임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세월호 참사와 동시에 팽목항으로 달려간 사진가들, 다큐멘터리 작가들을 비롯하여 세월호 유가족들의 육성들을 고스란히 담은 르뽀 작가들, 세월호 희생자들의 삶의 궤적을 기록한 사진작가들의 빈방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세월호 참사를 둘러 싼 기억으로서의 예술행동은 광범위하고 밀도있게 진행되었다(이원재, 「예술행동을 둘러 싼 사회적 실천과 연대」, 『좌파가 미래를 설계하는 방법』, 문화과학사, 2016, 참고). 세월호 예술행동은 세월호 유가족이 광화문 광장에서 농성하는 즈음에 ‘4.16 스테이지’란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8) 『동아일보』 2016년 12월 28일자 기사,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최순실 작품’ 참고.

    9) 『연합뉴스』 2016년 12월 28일자 기사, ‘朴대통령, 문화계 ’주도권 잡기‘ 차원 미르재단 추진’ 참고.

    10) 정혜주, 『유신헌법 반대운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6,16쪽

    11) 지그문트 프로이트, 『히스테리 연구』, 김미리혜 역, 열린책들, 2003, 163쪽.

    12) 한홍구, 『유신-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겨레출판, 2014, 161쪽.

    13) 옥은실, 「1970년대의 금지곡과 공연윤리위원회의 검열」, 『문화과학』, 80호, 2014년 겨울호, 201쪽.

    14) 권보드레 외, 『1970 박정희 모더니즘-유신에서 선데이서울까지』, 천년의 상상, 2014, 62쪽. 

    15) 다음 인용문을 보자. “마오저뚱이 중국인민의 수호 신이 된 것처럼 박정희는 적잖은 한국국민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가 몰아낸 무당들마저 그를 몸주신으로 받아들였을 정도니 말이다. 이는 일종의 방어전략인 동시에 ‘미신타파’의 총수였던 박정희를 5000년 가난을 몰아낸 영웅으로 재현한 결과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전근대적 민속신앙의 몸주신이 된 것은 근대화의 결과였다. 박정희는 이미 현대의 신화가 되어버렸으며 그 한복판에는 경제개발이라는 지극히 근대적인 현상이 놓여있다.”(권보드레 외, 『1970 박정희 모더니즘-유신에서 선데이서울까지』, 90쪽).

    16) 한홍구, 같은 책, 22쪽. 

    저자소개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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