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라는 단어의 뜻을 인터넷 국어사전에서 문득 찾아보았습니다.
[갈등]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함. 또는 그런 상태
사진을 찾아보니 칡덩굴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가며 올라가기에 서로의 생장을 방해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다른 두 존재가 결국 얽혀 있는 일이 갈등이라는 뜻의 어원이었던 거죠. 물론 이 두 식물이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굳이 둘을 잡아 뜯어 떼어내지 않아도 두 덩굴의 사이의 틈을 벌려 조금만 느슨하게 감아올라 가도록 하면 된다고 합니다.
문득 이 ‘갈등’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게 한 시작점은 바로 한 영국 드라마로 지난 3월 13일(목)에 공개된 이래로 넷플릭스 시청 글로벌 1위를 차지한 작품인 <소년의 시간>입니다. 4부작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아래 원테이크 촬영 기술로 시청자들의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현재와 같은 갈등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그 원인의 지점을 밝히는 것과 함께,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수작이었습니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게 되는 갈등의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소년의 시간> (영국 | 2025)
13세 소년 제이미는 같은 학년의 여학생을 살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긴급 체포됩니다. 연약해 보이는 체격, 크게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나름 화목한 가정환경, 피해자와의 관계성도 미비합니다. 과연 이 아이가 그런 잔혹한 범죄를 저리는 범인이 맞을까? 의심하게 하는데요, 제이미는 과연 범인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따라가던 시청자들은 인지심리학자와 제이미의 대화만으로 50분을 꽉 채워가는 3화를 보며 이 숨 막히는 대화 속에 숨겨진 상징과 남녀 갈등으로 치닫는 또래 문화, 채워지지 않은 인정욕구의 비틀린 표출 등의 여러 갈등 요소들을 하나씩 찾아내며 자신의 상황도 돌아보게 됩니다. 별거 아닌 것 같던 작은 결핍, 숨 쉬듯 깔려 있어 알아채지 못하는 혐오, 때로는 그들만 아는 상징과 약어 속에 숨겨진 거대한 어둠 등. 우리가 이것들을 계속 모른 채 하거나 모르고 있다면 운 좋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분명 어디선가 사회적 피해와 상처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과 주변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본 많은 이들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의 범인의 어머니인 저자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많이 떠올리더라고요.
<소년의 시간>
사실 저 역시 갈등 상황은 적극적으로 피하고 싶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고, 딴지를 거는 사람보다는 내 의견에 동조해 주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죠. 그런데 자연은 원래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이라고 생태학자인 최재천 작가는 이야기합니다. 그는 소통은 원래 잘 안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 불통을 그저 피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 곪아 터지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며 부딪히고 이후에 연고를 바르며 치유하는 것이 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숙론』 (최재천 | 김영사 | 2024)
거듭 강조하지만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다. 잘되면 신기한 일이다. 소통이 당연히 잘되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불통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를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했다.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숙론을 통한 소통을 배워야 할 때다.
『숙론』 中
가장 느린 길이라도 결국에는 상대와 마주하고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눠보려고 하는 방법이 서로를 말도 통하지 않는 적으로만 간주하는 것보다 이상적인 해결법일 것입니다. 서로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누구 하나를 해치우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세계전쟁을 반복해서 겪은 후 세계가 깨달은 해결책이니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나와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와의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습니다. 그럼 뭐 어떤가요? 이제라도 우리 스스로를 가르치면 되죠.
『숙론』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아리안 샤비시 | 이세진 역 | 교양인 | 2023)
이슬람 가정에서 자란 비백인 여성이자 영국에서 철학교수를 하고 있는 쿠르드계 영국인인 저자는 이 교차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분열 속에서의 논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백인이나 남성도 차별 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역차별 딜레마, ‘남자는 다 쓰레기야’라고 이야기하는 총칭적 일반화 문제,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 표현의 자유와 캔슬 컬쳐 등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보았을 양극화의 갈등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준비 없이 감정만으로 주변의 다른 이와 부딪히거나 또는 복잡한 이슈에 대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지 않도록 이 책은 우리의 사고를 예습시켜 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중 중요한 한 가지가 이것이겠죠.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함께 나눠볼 질문>
1. 일상 속에서 겪는 갈등 상황에는 무엇이 있나요? 그 갈등 상황에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였나요?
2.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나요. 이들과 만약 1:1로 1시간 동안 무조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요?
3. 독서동아리에서 혹시 금기시 되어 있는 토론의 주제가 있나요? 이 이야기를 다루는 것, 다루지 않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4. 좋은 토론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5. 논쟁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논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6. 논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참여하는 법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었나요?
7. 우리 독서동아리 모임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더 읽을거리]
책: 『갈등 해결 수업』
: 우리는 결국 갈등 없이는 살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유토피아니까요. 아니, 사실 소설 속의 유토피아도 알고 보니 유토피아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렇다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아니면 갈등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지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책: 『비폭력 대화』
: 우리 언어 속에 나도 모르게 녹아 있는 폭력의 요소로 인해 갈등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진 않을까요? 일상에서의 비폭력 대화의 연습을 시작해 보아요.
책: 『행복한 커플은 어떻게 싸우는가』
TV 프로그램 <이혼숙려캠프> 보신 적 있으세요? 서로 지속적으로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는 현명하게 잘 싸우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가장 근거리에서 자주 부딪히는 존재인 파트너와 어떻게 하면 관계를 지켜가며 잘 싸울지를 도와주는 책입니다.
드라마: <성난 사람들>
: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운전 중에 부딪힌 사소한 일을 시작으로 그 분노를 누르지 못한 채 자신과 주변을 망가뜨려 가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한 편에는 이들의 뿌리 깊은 분노의 사회적 이유가 하나씩 드러내는데요,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분노와 이유도 이와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진희(책읽는사회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