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책 사줄게’ 프로젝트를 들어보셨나요?
청주의 작은 서점 <책방, 앤>의 책방 대표와 단골손님이 함께 마음을 먹고 매달 책 3권을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선물하기 시작한 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책선물 후원자가 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를 기사로 접한 많은 이들이 자신이 사는 동네서점에 청소년을 위한 책선물 선결제에 동참하며 이와 같은 프로젝트가 더욱 넓게 퍼져가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이었습니다.
용돈만으로는 읽고 싶은 책을 선뜻 살 수 없을, 내가 알지 못하는 청소년을 위해 선결제를 하는 사람, 그 마음에 공감하여 동네서점의 후원자가 되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모두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들이죠. 이렇듯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을 때 기뻐하는 마음이 드는 한편,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큰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대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거의 끝에 다다르지 않았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물건은 물론, 주고받는 시간과 마음에도 어림잡아 가치를 매겨 저울에 달고, ‘가성비’라는 말이 모든 것에 달라붙습니다. 돈으로 쓰는 소비는 물론, 내가 쓸 시간도, 마음의 방향도 최대한 ‘가성비’를 따져서 결정하게 됩니다. 가능만 하다면 손해만큼은 조금이라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늘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극강의 효율로 굴러가는 듯한 자본주의의 마음속에도 사실은 빈틈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빈틈이 우리를 살게 하고, 그 빈틈에 매료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청소년 책 사줄게’와 같은 프로그램의 이야기를 광고비를 받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널리 퍼트리게 되는 것이죠.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오가와 사야카 저자 | 지비원 번역 | 갈라파고스 | 2025)
책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는 홍콩 ‘청킹맨션’에 거주하는 탄자니아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함께 겪으며 참여관찰한 인류학자의 책입니다. 이들의 존재와 생활상 자체가 불법과 합법의 경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인 와중에 아무도 믿지 않기에 오히려 서로 돕고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는 타국의 이야기라거나, 또는 우리로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커뮤니티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펼쳐 보면 이들의 독특한 커뮤니티에 깔린 가장 큰 미덕인 무리하지 않는 ‘겸사겸사’라는 태도, 사람은 누구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기에 그의 과거의 과오도 영광도 현재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오직 현재의 그가 내 앞에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만 보는 판단, 아울러 뼛속까지 장사꾼인 이들이 자신들 앞에 놓인 이익과 부담을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모습으로 기어코 교환하는 지혜까지 흥미롭게 읽어 내려 가게 됩니다.
청킹맨션에서는 적어도 밥 굶는 일은 없습니다. 타국에서 일하다 사기를 당하거나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가지고 온 돈을 몽땅 털려버렸다면 맨션 입구나 복도에서 그날 수지맞은 장사를 한 누군가와 마주치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이 사람에게 아무런 기대 없이 그냥 밥 한 끼를 사줄 겁니다. 식사를 대접받는 사람이 고마워할 거라는 마음이나 그가 후에 잘 풀릴 때 나에게 잘해줄 거라는 기대감이 깔린 행동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그냥 마침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이기에 ‘겸사겸사’의 마음입니다. 반대로 타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도 참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부탁의 말을 건네 봅니다. 만약 거절당하면 또 다른 사람에게 쉽게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있는지 묻습니다. 때로는 가볍게 받은 이 부탁이 생각보다 큰일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그 일을 부탁하는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닌 결국 이 일이 나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풀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타인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며 동시에 내 마음을 주는 것도 두려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작은 일 하나도 기대지 않고 오롯이 홀로 서려는 마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오래전 우리도 청킹맨션의 이들과 비슷한 생활을 했었다는 향수나 노스탤지어가 우리 주변에 은근하게 느껴집니다. 각종 복고풍의 유행이 돌아오는 것에는 오지랖이라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 안에 뭉근하게 따스한 애정이 흐르던 그 시절의 마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도 있지 않으려나요?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지카우치 유타 저자 | 김영현 번역 | 다다서재 | 2025)
일상생활 속에서 ‘증여’라는 단어를 듣거나 쓸 일은 ‘부모가 자식에서 재산을 증여한다.’ 정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만큼 딱딱한 한자어로 느껴지고 나와는 큰 관계가 없는 것 같은 이 단어를 깊게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빈틈을 메우는 증여의 철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는 주고받음의 교환·거래가 아닌 수신자와 발신자 사이의 먼 시차가 존재하는 ‘증여’의 개념에 대해서 새롭게 그 정의를 정립하고자 하는 일종의 철학서입니다. 같은 상품도 내가 지갑을 열어 구매했을 때와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게 되었을 때 그 상품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는 것처럼 정말로 중요한 것은 타인이 증여해 주었을 때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셀프 선물’이라는 말은 공허한 개념이라고 말하죠) 그렇다면 타인에게 무언가를 받은 일이 최근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은 공허한 삶을 사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책을 통해 단어와 개념 하나하나를 다시 살펴보고 그를 통한 기초와 토대를 쌓아가며, 이건 대체 무엇을 위해 갑자기 이야기하는 것인가 싶은 논리 개념을 마치 평평한 대지 위에 집 한 채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듯이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사실 우리가 사는 이 현실, 이 삶 자체가 수많은 증여를 통해 만들어진 세계라는 점을 피부로 와닿듯 느끼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감사함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죠.
저자는 증여를 ‘받아버린’ 사람은 그 부채감을 가지고 다시 또 누군가에게 증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증여의 완성이죠. 그러나 내가 누군가에게 증여받았다는 것을 깨달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당연하게 내 주변에 존재한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이름 모를 어떤 영웅들을 통해 내게 닿게 된(증여된) 것이라는 걸 알아채는 상상력. 그 상상력을 도와주는 것이 결국은 독서라는 행위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독서라는 행위를 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는 물건도 그 책을 쓰고 만든 이들의 수고를 증여받았기에 우리의 책장에 존재하는 것이죠.
이번 레터는 조금 막연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돌아가 이름 모를 동네 청소년에게 책을 선물하고자 하는 마음, 내게 그 책을 선물한 이의 얼굴을 알지는 못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그 선물을 받는 이의 마음, 언젠가는 또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와 같은 선물을 하게 될 마음이 바로 이번 레터가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크고 작은 그런 마음들로 이루어져 온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도 함께요.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함께 나눠볼 질문>
1. 최근에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경험을 나누어 주세요.
2. 자신이 받아본 것(유무형의 모든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과 그 이유를 알려 주세요.
3. 나라면 ‘겸사겸사’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준다면 어디까지 가능할지 이야기해 봅시다.
4. 책을 읽기 전과 후로 ‘증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5. 증여와 호혜와 관련하여 이야기하는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6. 책의 후반에 나오는 매일의 삶을 위한 계산을 멈추고 탄자니아 이들처럼 살아보며 큰 자유를 느끼지만, 결국 일본으로 돌아오는 순간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저자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여러분이 청킹맨션의 이들과 함께하게 된다면 어디까지 적응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을 듯 하나요?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7. ‘교환’ 또는 ‘거래’와 차이를 두는 ‘증여’의 개념에 대해서 저자의 생각과 동의하는 부분 또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8.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의 증여는 결국 멀리 보면 자신의 이익으로도 돌아오는 증여입니다,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의 증여는 발신자를 숨겨야만 완성되고 도달하기까지의 시간도 더욱 오래 걸립니다. 이를 기반으로 생각해 본다면 증여하는 인간의 본능은 이기적일까요(결국 내게 돌아온다), 또는 이타적일까요? (그저 마음이 동해서 한 일이다.)
[더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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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 아이들에게 빵을 무료로 나눠주는 남해의 빵집 이야기가 최근 TV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면, 매일 다른 빵으로 아이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어른의 마음이 따뜻합니다.
인터뷰: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빚져야 산다... 자본주의의 빈틈을 메우는 ‘증여’의 마법
『우리는 왜 선물을 줄 때 기쁨을 느끼는가』 저자 인터뷰입니다. 레터의 짧은 소개글보다 책의 개념에 대해 더 친절히 설명해 줍니다.
윤진희(책읽는사회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