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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동아리지원센터

동아리 소개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난 이야기

독서동아리 ‘채움’ [인터뷰] 12년간 오직 책 속으로, 3시간으론 부족한 뜨거운 토론의 장 : ‘채움’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로17길 12 (개봉동) 가린열북카페
  • 성인
    1.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2. 나를 보내지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민음사 펴냄)

								

우리 평생 가야 한다!”

마치 세뇌라도 하듯이, 입버릇처럼 말하다 보니 회원 모두가 당연히 평생 한다고 생각하는 모임이 되었다는 구로구 독서동아리 채움2013년 결성 후 현재까지 12년간 지속된 독서동아리이다. 첫 시작은 개봉어린이도서관에서 진행한 여희숙 독서토론 길잡이의 강의를 함께 한 사람들로 이뤄졌다. 이후 여느 독서동아리와 마찬가지로 몇몇 회원의 들고남이 있었지만, 현재의 7명의 회원으로 자리 잡은 이후로는 한 달에 두 번의 정기적 모임을 하며, 매 모임마다 3~4시간을 오롯이 독서토론만으로 가득 채우는 열혈 토론 모임이 되었다.

 

넷째 주 토요일 오전은 토론의 사회자 역할을 하는 임은경 독서지도사와 함께 인문, 사회, 경제, 철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이야기한다. 임은경 독서지도사가 다양한 토론을 이끌어갈 책의 목록을 제시하면 그 안에서 일 년간 읽을 책의 순서를 함께 정한다. 매주 둘째 주 금요일은 회원들만의 토론의 시간이다. 두 모임 모두 3~4시간을 훌쩍 넘겨 토론 하는데도 회원들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김수향 | 우리 모임이 좀 오래되다 보니까 어떤 이슈에 대해 비슷한 의견일 때가 많아요. 성별도 같고 연령대도 비슷하다 보니 더 그렇죠. 임은경 선생님과 하는 모임의 좋은 점은 선생님께서 일부러 강력하게 반론을 제기해 준다는 것이에요. 그 반론을 받아 좀 더 생각하고, 사고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이 짜릿해요. 일반적인 독서 모임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일상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는데 선생님과의 모임은 3시간 넘게 딱 책에만 집중해서 이야기해요. 다른 독서동아리와 채움의 가장 큰 차이점이 이것이에요. 쉬는 시간도 없이 진행되는 3시간이 피로하다기보다는 끝나고 나면 오히려 개운한 마음이 들면서 오늘 모임도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윤희 | ‘채움의 좋은 점은 다른 모임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비난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말 못하는 부분도, 이 모임이라면 받아들여질 거라는 믿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동안 각자 다른 의견을 인정하면서 토론하는 방법이 훈련되고 길들어진 것 같아요. 나의 의견을 비난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다르구나하고 받아들이는 그 분위기가 저는 무척 중요하다고 봐요.

 

 

 


 

 

시간과 함께 어느 정도 검증된 책을 주로 읽는 토요 모임과 달리, 금요 모임에서는 신간 도서를 읽기도 하고, 토요 모임보다는 약간 느슨하고 편하게 서로의 근황 등도 이야기하며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임 또한 3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이다. 모임 후에도 카카오톡 메신저로 못다 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매달 한 권씩 함께 읽고 있는데, 첫 시작점에서는 예상되는 긴 여정 때문에 선뜻 함께 하자고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언젠가는 거쳐야 할 책이라는 생각에 현재 7권까지 읽었다. 취재에 응한 모임 날은 일정상 못다 읽은 회원을 배려하여 5권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짚는 모임이었는데,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회원들은 무려 15페이지를 준비해온 박재경 회원의 발제문을 길잡이 삼아서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책으로 빠져들어 토지 속 주요 인물들에 대한 성토대회를 시작하였다.

 

이토록 넓고 깊은 독서토론을 즐기는 채움이 함께 읽는 책 중 2024년의 책으로 뽑은 1, 2위는 무엇일까? 1위는 바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2위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이다.

 

 

박재경 | 코로나를 겪은 후라 눈먼 자들의 도시가 더 와닿았던 것 같아요. 팬데믹처럼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에서 인간 사회와 본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에요. 인간의 악한 면을 나쁘게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닥친 인간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해요. 남자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나오는 여자들의 연대가 따뜻하게 와닿은 부분에 관하여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김민선 | 나를 보내지 마는 클론과 생명윤리, 특히 장기 이식 문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탐구하는 책이에요. 클론들이 겪는 감정적 갈등과 윤리적 질문이 깊은 고민을 안겨줬어요. 장기 이식과 생명에 대한 윤리적 토론을 나눌 수 있기에 독서 모임에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향 | 저는 사실 나를 보내지 마가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기후위기 활동가라서 비건이나 육식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책 속에서 이런 문제의 대상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바뀌었을 때의 충격이 너무 컸어요. 동물복지를 위해 무항생제, 동물복지 식품을 사려고 한 삶에 대한 저의 기준이 일순간에 무너진 것이죠. 동물의 자리에 복제 인간을 놓아보자 이 기준이 결국 나만의 이기적인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란에 빠지게 한 책이에요. 반대로 눈먼 자들의 도시는 기후위기와 관련한 책을 읽으면 나오는 혼란들이 그대로 벌어지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저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않았어요. 여성들의 연대 장면이 아름답긴 하지만, 작가가 단지 비관적인 책이 아니라는 식으로 써둔 느낌이었어요. 그보다는 나를 보내지 마가 제게 제대로 화두를 던졌던 책이었어요.

 

 

잠깐의 질문과 답변 속에서도 찬반이 느껴지는 모습이 이들의 솔직하고 치열한 독서토론을 살짝 엿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12년의 기간 동안 과연 수월하기만 했을까? 지금까지 채움이 이어져 온 과정에는 채움의 시작을 함께 한 강현경 회원의 힘이 컸다. 강현경 회원은 구로구 도서관에 사서로 근무하며 독서동아리 리더 과정의 시작을 열어주었고, 개봉도서관은 10년 동안 독서리더 양성 과정수업을 지속하여 이용자들에게 즐겁고 진지하게 함께 읽을 기회를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구로구 독서동아리의 토대가 꾸준히 다져지고 있다. 평생을 함께할 현재의 회원들 또한 그의 소개로 구로구의 다른 독서동아리에서 독서토론을 시작한 경험이 이어져 채움에도 함께하게 된 인원이 많다.

 

 


 

 

 

전진희 | 개봉도서관 소속의 동아리인데, 도서관에 모임 장소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어요. 지금은 <나만 아는 집>이라는 모임 공간을 정기적으로 대관하여 모여요. 저와 강현경 회원님이 초기부터 활동해온 회원인데요, 12년간 여러 회원들이 오고 가면서 동아리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싶은 위기도 있었지만 민선님, 수향님, 윤희님, 재경님이 합류하게 되면서 동아리가 단단해졌어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멤버들로 토론하고 있지 않을까요? 요즘은 노안이 와서 책 읽기가 싫을 때도 많아요. 하지만 회원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나면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어져요. 혼자 읽기와 다른 함께 읽기의 힘인 것 같습니다.

 

강현경 | 공간도 어려움이 있었고, 한 사람이라도 더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을 찾는 것도 어려웠어요.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결국 고정된 시간이 있어야 그에 맞춰서 시간을 낼 수가 있더라고요. 기다려주는 동지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동아리가 되길 바라요. 도서관 사서로서 이렇게 부족한 공간 문제를 겪으며 회비를 내며 운영하는 동아리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이제는 정말 편안한 동지가 된 것 같아요.

 

김수향 | 초반에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억지로 읽어야 할 때는 시간 낭비라 느껴져서 참여를 고민했었어요. 하지만 막상 토론에 참여하고 나면 머리를 때리는 듯한 느낌을 얻게 되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쌓여 이제는 완독하지 못하더라도 모임에는 꼭 참여합니다.

 

 


 

 

이제는 독서동아리 모임을 생활 속의 당연한 일과로 받아들이고 있는 채움회원들이지만, 그래도 굳이 동아리 하길 잘했다 싶을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는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았다.

 

강현경 |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인플루엔셜),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하미나, 동아시아) 등 동아리에서 읽은 책을 통해 내적 치유를 느낄 때가 있어요. 나는 왜 힘들까? 나만 다른가?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토론 후에는 좀 더 가볍게 느껴졌어요.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를 대하는 나의 마음이 넓어진 거라고 봐요. 개봉도서관에서 다른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모임을 그만둘까 했던 적도 있지만, 회원들이 기다려주고 붙잡아 주신 덕분에 지금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강정희 | 혼자 읽었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고난이도의 책을 만나도 어떻게든 함께 힘들게 완독하고 토론하다 보니 다양한 시선과 확장된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며 질문을 하게 된 자신을 발견할 때!

 

박재경 | 독서동아리를 하면서 소설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입시에 맞춰 공부하느라 소설을 읽을 때 인물, 사건 배경에 대한 서사를 찾는 거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독서 모임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단편은 사건을 중심으로 인물을 보게 되었고, 장편은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읽게 되었어요. 소설가의 허구적인 상상력이 이끄는 역사 속 인물들의 고뇌와 선택, 갈등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개인적 의문들을 발견하며 소설을 즐기고 있습니다.

 

김민선 | 책을 매개로 같은 동네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또 사회적 약자, 인권, 환경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고민하게 되어서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습니다. 언제나 독서동아리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수향 | 회원들과 독서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박경리 토지를 읽고 있으니 토지 투어를 떠난다거나, 북스테이를 해보고 싶어요.

 

이윤희 | 채움 12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요. 파주에 위치한 북스테이 지지향에 묵으며 사적인 서점에 방문해 보려고 해요. 새로운 마음으로 그동안의 모임을 돌아보고 재정비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10년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앞으로의 여정을 더욱 뜻깊게 만드는 여행이길 바라요.

 

 

채움의 꾸준한 열정의 지속에는 구로구만의 독특한 독서동아리의 연대도 한몫하고 있다. 현재 채움이 활동하고 있는 구로구 개봉도서관은 독서활동가인 차정신 강사의 열정에 힘입어 매년 1~2회의 독서동아리 리더 양성 과정을 열고, 교육이 종료된 후에는 참여자들을 모아 새로운 독서동아리를 만든다. 2024년에는 18, 19기로 두 차례 수업을 진행하였고, 독서동아리 소소담이 결성되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모인 개봉도서관의 독서동아리들은 매년 함께 모여 연말 파티를 여는데, 올해는 124일 오전에 구로구공익활동지원센터에 함께 모였다. 모임의 기획과 준비, 현장의 운영까지 독서동아리들의 자율적인 참여와 준비로 이뤄진 이 행사에서는 개별 동아리의 1년 동안의 활동 내용과 내년 계획을 다른 동아리들 앞에서 소개하는 발표 시간을 가졌다.

 

 

 

 

 


김수향 | 1년에 한 번 연말에 구로구의 13개 독서동아리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모임을 유지하는 방법이나 진행방식, 활동 내용을 공유하고 서로의 모임에서 힘들었던 부분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또 같은 책을 읽었지만 서로 다른 토론 내용을 알 수 있어 더 넓게 사고하는 것에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윤희 | 구로구 독서동아리의 회원들 중 다수가 구로구 내의 여러 독서동아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에요. 그러다 보니 동아리들 간에 좋은 책과 활동들이 자연스럽게 공유되어요. 이를 통해서 작가와의 만남과 도서관 활동, 학교 독서동아리,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독서동아리들의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 격려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처음 채움을 만나 눈인사를 드렸던 구로구 독서동아리 연말행사날이 12·3 비상계엄령이 있던 다음날 아침이었기 때문인지,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이런 궁금증이 떠올랐다. “모종의 이유로 앞으로 독서동아리를 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떨 것 같은지요?” 가장 먼저 돌아온 말은 슬픈데요였다.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슬픔이라는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고. 그동안의 시간이 쌓아준 독서력과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과 넓어진 시야 덕분에 혼자 읽더라도 깊게 읽을 것 같다는 답변도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가운 책,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책을 발견했을 때, 또는 누군가와 함께 따져가며 읽고 싶은 책이 생겼을 때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하기도 할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공통적인 답변은 행여 만나서 읽지 못하더라도 혼자서라도 읽고 있을 것이다라고.

 

 


 

 

 

 

채움의 12년 동안 개인의 사정, 팬데믹 등으로 인해 서로 만나기 힘들거나 동아리를 지속하기가 힘들었던 시기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결국 평생 가자라고 구호처럼 이야기하는 그 말들, 그리고 치열한 토론과 함께 쌓아간 시간이 가끔 귀찮거나 부담스러울 때를 떨치고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이들을 모임 장소로 계속 이끌어 왔다. 읽어온 책이 각자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함께 나눈 이야기들로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관계를 다졌다. 동네에 든든한 평생의 책친구가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각자 급히 아이 밥을 차려놓고 모인 동네 모임 공간에서 떡볶이를 시켜 나눠 먹으며 추운 계절에도 열띤 토론에 점점 얼굴이 발그랗게 상기되는 채움의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함께 일궈온 한 권 한 권 쌓인 책의 산과 깊은 이야기의 호수를 가늠해 보게 된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한참 져도 전혀 억울할 게 없을 듯하다.



인터뷰 일시 : 2025년 1월 10일(금)

인터뷰 진행 : 윤진희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

최종 등록일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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